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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곳 근처에 천변길이 하나 있다. 그 옆에 할머니들 세 분이 연합해서 텃밭을 만들었다. 서울로 치면 한강둔치에다 밭을 가꾼 것이다. 할머니들은 정말 부지런히 밭을 가꾸었다. 마늘잎이 무성히 올라왔다. 할머니들은 틈만 나면 김을 맸고, 한 명씩 나올 때도 있었고, 세 분이 나란히 더위에 땀을 흘리며 잡초를 뽑을 때도 있었다. 정성을 들인 텃밭에 수확기가 다가왔다. 마늘잎이 무릎까지 닿을 만큼 올라왔다. 이제 거둬들이기만 하면 되겠구나, 싶었을 어느 금요일 오후 구청은 이 텃밭을 좌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구청 직원 몇 명과 포클레인 한 대가 출동해 밭을 뒤엎고 새빨간 글씨로 ‘경작금지’라는 간판을 세워놓고 돌아갔다. 재발 방지를 위한 충격과 공포를 위해 구청은 수확기를 노린 것일까? 나는 흙과 뒤덮여 흐트러져 있는 다 된 작물들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할머니들은 속상해서 앓아누웠을지도 모른다. 그럼 땅을 그냥 놀리느냐는 할머니들의 생각과, 여기는 공지라는 구청의 말은 누가 맞을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언가에 이게 옳다, 저게 옳다, 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지는 것이구나, 하는 것이 허허벌판이 된 텃밭 자리를 보며 내가 생각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건데, 그전의 중앙일보에 이어 어제 조선일보에서 칼럼 청탁이 왔다.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물론 승낙하고 싶었지만 정중히 사양했다. 조·중·동에 반대한다는 거창한 명분보다도 십년쯤 전에 ‘파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선생님과 약속했기 때문이다. 종편에서도 몇 번인가 출연 요청이 왔지만 하지 않았다. 태생적으로 미디어법이라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 한마디로 내가 싫어서 안 한 것이다. 그런데 “착한 FTA, 나쁜 FTA”라는 말처럼 종편도 요즘은 ‘착한 종편’, ‘나쁜 종편’이 따로 있나 보다. 이를테면 JTBC는 우리 종편, 착한 종편 취급을 받고 있는 것 같다. 트위터도 하지 않고 TV도 보지 않는 나는 그 이유를 잘 모른다. 처음에는 그렇게 종편채널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JTBC에는 열광하는 것 같다. 애초에 종편의 태생 때문에 분노하다가 공중파보다 나으니 괜찮다, 라는 건 내 귀에는 좀 이상하게 들린다. 갈수록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누군가는 분명히 중앙일보나 조선일보에 글을 쓰지 않는 나를 바보 취급 할 것이고, JTBC는 ‘우리 종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판 자체가 바뀐 게 언젠데 그러느냐며 나를 후진 사람 취급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겠다. 내가 알 수 있는 건 그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뿐이다. 할머니들이 웃으면서 가꾸던 텃밭이 옳은지, 불법 경작이니 다 키운 밭에 엄벌을 가하는 게 맞는지 모르는 것처럼, 나이를 먹을수록 알 수 없는 일들만 점점 더 늘어난다. 그럴 때면 그냥 천변을, 걷기만 한다.
김현진 |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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