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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運)은 힘이 세다.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면, 그것이 좋든 나쁘든 운 때문으로 돌리는 것 외엔 달리 도리가 없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관운(官運)이 세다. 왕조시대 정사를 좌지우지하던 권신(權臣)도 아닐 터인데, 상상권 밖 ‘부활 총리’라는 시간의 법칙을 거스르는 성취를 이뤄냈으니 말이다. 버스도 지나가면 돌려세우지 못하는 게 세상 법칙인데….
실상 총리 시작부터가 김용준 후보자 낙마로 가능했던 것을 생각하면, 박근혜 정부 이후 ‘그’ 한 사람을 위해 모두 3명이 무대에서 사라졌다. 인사청문 링에 오르는 족족 녹다운당했다. 박근혜 정부의 협량(狹量)한 인재풀을 감안하면 ‘총리 정홍원’의 관운은 이 정부 5년 내내 이어질지 모른다는 농담도 들린다.
“내가 아니면 누가 지옥에 들어갈 것이며, 또 누가 호랑이 굴에 들어가겠는가? 또 나 아니면 누가 고해(苦海)로 들어가리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기초를 닦은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정무원 총리가 문화대혁명 초입이던 1966년 자신의 참담한 심경을 전한 말이다. 일생 동안 마오쩌둥(毛澤東) 주석 뒤에 있었지만, 살아서나 죽어서나 1인자보다 사랑받은 2인자였다. 온건파 혁명 동지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오 주석을 에워싼 린뱌오(林彪)·장칭(江靑) 일당과 치열하게 싸웠지만, 그 투쟁도 1인자가 용인할 수 있는 한에서만 해야 했던 고뇌가 담긴 토로다. 때로 혈육과도 같던 혁명 동지 류사오치(劉少奇)를 공개 비판하는 등 “저우 총리는 문화대혁명 동안 자신의 생각과 다른 말을 하고 다른 일을 해야 했다”(덩샤오핑)고 한다.
정홍원 총리의 최근 행보는 스스로 “한국이 4·16 이전과 이후가 같을 수 없다”고 했듯 과거와 사뭇 다르다. ‘부활 총리’ 이후 전남 진도만 수차례 찾고, 종교 지도자들을 만났으며, 불시에 지하철을 타고 시민들과 마주했다. 26일엔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페친(페이스북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다. 주로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고 한다. 또 그 이야기들을 정리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대독총리’라는 이름의 유령 총리는 이제 없다.
총리는 헌법상 대통령의 ‘제1 보좌기관’이다.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헌법 제86조2항)한다. 그 점에서 총리는 행정 권력, 즉 ‘공권력’의 정점에 있다고 할 것이다.
정부 권력이 조롱받는 것은 이 공권력의 비루함으로 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권력은 말 그대로 ‘공공(公共) 권력’이다. ‘공공의, 공공에 의한, 공공을 위한 권력’이란 말이다. 하지만 그간 우리사회 공권력은 형식상 ‘공공에 의한’ 권력이긴 했지만, ‘공공을 위한’ 권력이냐엔 의문부호도 컸다.
그럼 무엇이 ‘공공을 위한’ 권력인가. 주상절리처럼 쩍쩍 갈라진 우리사회 간극을 생각하면 내용적 공통분모를 찾기가 당장은 쉽지 않다는 점은 인정하자. 내용이 안되면 남는 것은 형식이다. 누구든 ‘이건 공공을 위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게 하는 심리적 조건이다.
그 대표적 원칙이 ‘공평무사(公平無私)’일 터다. 진영·계층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공평무사함이다. 세월호 유족들에게 어버이연합이란 이름의 ‘백색 테러’가 가해져도 아무 일이 없다면 그건 공평한 것일 수 없다. 대통령 주변 알 수 없는 실세들이 인사 때마다 비선·문고리 논란을 일으켜도 별 탈이 없다면 그건 ‘무사(無私·사심이 없음)’한 것일 수 없다.
공직개혁과 부정부패 근절을 진두지휘할 국무총리 소속 ‘부패 척결 추진단’이 공식 출범한 25일 오전 정부 서울 청사에서 배성범 부단장(부산지검2차장,)이 출정 다짐문을 정홍원 총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그 점에서 공권력의 상징적 수장인 총리 권력의 첫번째 책무는 1인자 주변 ‘사(私)권력’의 독초들과 맞서 싸우고 제거하는 일일 것이다. 바로 사이비 2인자들이다. 마오·린뱌오·장칭이 얽힌 권력투쟁의 고해 속으로 마다하지 않고 걸어들어간 저우 총리처럼 말이다. 국장급 인사를 각 부처로 돌리고, 장관의 대통령 보고를 막아서던 ‘문고리 권력’을 뒤로 밀어내는 것은 그 점에서 총리 권력의 ‘비정상의 정상화’라 할 것이다.
문제는 “시시콜콜히 대통령과 나눈 이야기를 다 말할 수도 없다”는 하소연처럼 소리없이 해야 한다는 점이다. 총리 권력은 홀로 빛날 수 없는 달의 권력이다. 늘 해를 받아서만 빛날 수 있다. 따라서 총리 권력은 스스로 해가 되려 하지 않는 한에서만 유효하다. 해가 되려는 순간 모두 망한다. 공공 권력 내부의 사권력들을 제거하는 권력투쟁의 정당성도 빛을 잃는다. 그 주변에 또 다른 사권력의 독초들도 생겨날 것이다.
한국에서 총리로 산다는 것은 그래서 어렵다. 호랑이 굴 속으로 들어간 정 총리가 그저 운만 센 총리로 남을지, 아닐지는 이제 순전히 그에게 달렸다.
김광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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