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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혼용을 주장하는 전 국립국어원장 심재기 님의 글(3월16일자)을 보고 무척 놀랐다. 그동안 한글만을 쓰는 정책으로 의사소통에 상당한 불편을 초래했다면서, 해묵은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하였다. 한글 전용은 국수주의적 옹고집이며 비문화적이고 비역사적이라는 것이다. 낱낱이 따져 보자.
한자어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엄청난 소통 장애를 가져온다고 하였는데 소통 장애는 한글 탓일까. 세종은 ‘훈민정음’ 서문에서 서로 통하게 하려고 새 글자를 만들었다고 하였고 주시경 선생은 ‘독립신문’ 창간사에서 한글로만 써 상하귀천이 다 함께 보게 하려는 뜻을 내세웠다. 한자는 오랫동안 지배 계급이 지식의 폭넓은 유통을 가로막고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쌓아놓은 큰 장벽이었다. 소통에 큰 장애가 된 것은 한글이 아니라 한자였다. 아직도 한글을 ‘언문’으로 알고 한자에는 무슨 조화라도 붙은 양 여길 게 아니다.
한자 병기는 곧 한자 혼용으로 가는 첫걸음이며. 이는 글까막눈을 다시 생겨나게 만들고, 봉건 지배 계급의 상징을 되살리는 것이니 분명 국어 교육의 뒷걸음질이다. 독립문을 헐고 영은문을 다시 세우자는 망발이다. 또 초등 교육에서 복잡하고 수많은 한자를 낱낱이 배우고 하는 것 자체가 사교육을 유발할 것이다.
1980년대에 시작된 급격한 한글 전용 흐름을 ‘출판계, 언론계의 상업주의 논리와 교육계의 편의주의 논의가 맞물리면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보는 데서 한글 문화의 대중화를 막아보겠다는 귀족주의적 오만함을 느낄 수 있다. 한글에는 문화가 있을 수 없다는 공연한 편견일 뿐이다. 한자를 ‘진서’라 받들고 우리말을 ‘방언’이라 하고 한글을 ‘언문’이라 불렀던 것이 죄다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한글만을 써서 소통이 불편하다는 건 몇몇 기성세대가 인습을 고집하는 데서 나온 것이다.
한국한시협회가 서울 종로구 운현궁에서 연 ‘제21회 전국한시백일장’에서 응시생들이 ‘한자교육장려’라는 주제로 한시를 쓰고 있다. (출처 : 경향DB)
많은 문자학자들이 한글이 훌륭한 알파벳이라는 데 동의한다. 한자까지 빌려와 우리말을 적어야 한다면 알파벳으로서 한글은 불완전하다는 뜻이 된다. 이것은 우리가 한글을 일본의 가나처럼 음절 글자로 쓰는 것이 된다. 한글이 훌륭하다는 말은 빈말이 된다. 글자살이에는 습관이 큰 구실을 한다. 문자 교육 정책은 긴 눈으로 앞을 보고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과거의 인습에 매달리거나 여론에 휩쓸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러는 한자를 가르치면 인성 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기도 한다. 한자 문화에서 규범에 순응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말이 ‘인성 교육’이지 실은 배우는 사람의 자율성과 능동성이 전제되지 않은 일방적 주입으로 흐를 가능성이 더 크다. 개인이든 사회든 인습을 과감히 끊는 게 교육의 가장 중요한 기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영환 | 한글철학연구소장·부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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