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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도 이런 불통이 없다. ‘돈은 막고 입은 푼다’던 공직선거법 이야기다. 금권선거, 부정선거로 점철된 과거의 정치사를 혁파하겠다는 굳은 약속은 지금도 절실하다. 하지만, ‘성완종 리스트’가 던지는 불법 선거자금의 의혹 앞에서 주춤거리기만 하는 검찰의 행보에서 보듯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돈은 난 모르겠고 입만은 철저히 막는다’. 그리고 이 선거법의 후진성은 민주공화국이어야 할 대한민국을 밑도 끝도 없는 검찰공화국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선거에서 상대 후보에게 미국 영주권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던 일을 두고 법원이 허위사실유포죄를 적용해 당선무효의 벌금형을 선고한 것은 그 단적인 사례다. 선거 과정에서 상대 후보에 대해 이런저런 의혹을 제기하고, 그 상대 후보는 이에 맞서 적절한 해명과 함께 그 의혹을 퍼붓는 후보자의 품성과 자질 자체를 문제 삼아 역공으로 나아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상사다. 유권자들은 이런 공방을 바라보며 후보들의 도덕성과 판단력, 지도력과 함께 그 후보 진영이 보이는 전략수행의 능숙성 등을 평가하고 판단한다. 선거는 바로 여기서 의미를 가진다.

그럼에도 선거법은 정반대의 길을 달린다. 의당 자유로워야 할 후보 간의 검증은 물론, 입을 벌리고 말을 하는 순간부터 형사처벌과 당선무효를 앞세운 규제 일변도의 강공책으로 일관한다. ‘말하지 말라’는 것이 선거법의 지엄한 명령이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선거법의 모태는 90년 전 일본의 다이쇼(大正) 정권에까지 소급된다. 이 시대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향한 정치개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천황제 절대주의를 내세우는 관료집단과 신흥 자본가 집단 간의 타협으로 점철된 시기였다.

이 정권은 기존의 정치인 집단들과 관료권력의 기득권을 지켜내기 위해 대중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최소화하기를 원했다. 이에 이들은 치안유지법으로 기득권에 도전하는 사회주의 세력을 단속하는 한편, 선거운동을 극단적으로 통제하는 ‘보통선거법’으로 대중들의 입과 귀를 막았다.

이 선거법은 사전선거운동 금지, 호별방문 금지, 기탁금제, 선거운동원의 수와 자격의 제한, 연좌제 등 유례없이 다양한 규제장치들을 두어 사람들을 정치로부터 떼어놓았고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무력화했다. 후보자 매수나 매표 행위들을 처벌하는 선거법 규정들조차도 선거 과정의 투명성·공정성보다는 ‘선거의 불가매수성’이라는 명분 아래 천황이 지배하는 국가의 신성성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의회와 선거에까지 천황제적 절대주의를 관철시키려 했던 것이다.

이런 일제의 반민주적인 선거법 체제는 우리 선거법과 그것을 다루는 법원과 검찰에 그대로 답습된다. 얼마 전 법원이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에게 적용한 사후매수죄의 규정이나 그 판결 이유로 거론했던 ‘선거의 불가매수성’이라는 말에는 이런 후진성이 깔려 있다. 조희연 교육감이나 정봉주 전 의원에게 적용된 허위사실유포죄 또한 마찬가지다. 그것은 유권자들이 체제를 비판하고 권위에 도전하는 기회를 박탈해 버리는 장치로 오·남용되기 십상이다. 말의 성찬을 통해 정치의 절정을 이루어야 할 선거를 단순히 대표자를 정하는 투표기계로 전락시켜 버리는 것이다.

장애인 고 송국현씨의 장례식이 서울광장에서 장애인장으로 열린 12일 장례식에 참석한 한 장애인이 추모사 중 울부짖자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이 위로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그뿐 아니다. 수많은 규제조항과 그에 따른 가혹한 처벌조항은 선거에 참여한 그 모두를 잠재적 범죄인으로 만든다. 선관위가 가벼운 경고로 마무리하고 경찰 또한 불기소 의견이었음에도 검찰이 기소를 강행한 조희연 교육감의 경우는 그 대표 격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선거법은 검찰이 원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정치판에서 내쫓아 버릴 수 있게 만든다. 여기에 법원조차 사태를 악화시켰다. 검찰이 선거법 위반 사실을 입증하도록 한 것이 아니라 피고인이 무죄임을 증명하도록 법리를 뒤집어놓은 것이다.

이 바람에 검찰이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기만 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피고인은 유죄 판결을 받게 되며 당선무효가 되고 향후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돼 정치낭인으로 떠돌게 만든다. 검찰이 정치인들조차 두려워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되는 것은 이 지점에서다.

그래서 우리의 정치판은 90년 전 일제의 보통선거법 그것에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고착된다. 주지하듯 일본의 불완전한 민주주의는 만주사변을 전후해 일본 사회를 군국주의의 폭력에 빠뜨려버렸다.

우리의 선거법은 그 패악의 역사를 검찰공화국의 모습으로 재현한다. 조희연 교육감에 대한 유죄 판결은 그 엄중한 예후가 된다. 그 항소심은 이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검찰에 장악된 민주주의를 이제 대중의 것으로 되돌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상희 |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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