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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5월에는 아동과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 새겨보는 각종 행사와 모임이 넘쳐날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모든 어린이와 가정이 이런 따뜻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특히 가정의 힘만으로 보호될 수 없는 아동들은 아름다운 오월의 무대 뒤에서 미래의 주인공이 돼볼 수 있는 기회를 애타게 기다리고만 있을 것이다.

관련 통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린이날을 기념하고 가정의달을 축하하는 것 자체가 겸연쩍어진다. 전국에서 한 해에 2만 건이 넘는 아동학대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매년 4000명이 넘는 아동들이 빈곤, 학대, 유기, 미혼모 출산 등의 이유로 가정에서 벗어나 있다. 약 1만3000명의 아동들이 아동복지시설에서 자라고 있고, 그와 비슷한 수의 아동들이 위탁가정에서 보호되고 있다. 아마도 이들의 대부분은 만 18세로 성인이 될 때까지 시설에서 생활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아동보호체계에 대한 공공의 책무성이 그간 너무 허술하게 다루어져 왔다는 것이다. 아동이 가정에서 분리되었을 때, 그 아동에게 최선의 이익이 무엇인지를 가늠해보고, 어떤 방식으로 보호할 것인지를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이가 누구인지부터 불분명하다. 현행법상 책임의 주체인 지자체에서는 늘 그렇듯이 인력 부족을 호소하며 민간 기관들에 의지하고 있다. 그 결과 아동이 민간 입양기관에 맡겨지면 입양 가정에서, 양육시설에 맡겨지면 시설에서 자라나게 된다. 아동의 운명이 최초로 맡겨진 민간 기관에 의해 임의로 결정되는 셈이다.

더구나 아동복지시설, 위탁가정, 공동생활가정 등에 있는 아동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를 국가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실시간으로 아동들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통합 데이터베이스(DB)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부모가 아동을 이렇게 방치하고 있다면 아동복지법에 의해 아동학대로 신고될 법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이들을 그렇게 방치해오고 있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포용국가의 안전망이 보호가 필요한 아동들에게도 미쳐야 한다. 다행히 변화 조짐은 보인다. 아동복지법 개정으로 그간 분절적으로 이뤄져 왔던 아동보호체계가 보다 통합적으로 출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중앙입양원을 비롯한 아동 보호를 위한 8개의 기관이 통합돼 ‘아동권리보장원’으로 새롭게 출범하게 될 것이다. 이제 통합 기관의 탄생과 더불어, 그간 미흡했던 공적 책무성을 강화하는 정책적 방안들을 모색해야 한다.

아동보호체계를 촘촘하게 확충하고, 모든 단계에서 지자체와 정부의 책임을 보다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출생에서부터 보호의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서는 출생등록제를 도입하고, 학대 위기 아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예방할 수 있는 공적인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시설에서 보호되고 있는 아동들의 경우도 될 수 있는 대로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원가정 지원 서비스도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는 아동에 대한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아동복지에 대한 투자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아동은 투표권이 없기 때문이라는 우려가 그동안 현실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국가가 아동의 확실한 보호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책 최고결정자의 의지가 중요하다. 2019년이 아동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획기적으로 강화시킨 원년으로 기억되기를 기대해본다.

<이봉주 |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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