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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졸혼

opinionX 2019. 4. 24. 10:40

법원행정처에서 매년 발간하는 ‘사법연감’에는 재판과 관련된 다양한 통계가 실린다. 수많은 통계 가운데 언론이 즐겨 다루는 소재가 ‘이혼’이다. 2017년 이혼한 전체 부부 가운데 3만3124쌍(31.2%)이 20년 이상 결혼생활을 하다 헤어진 경우(2018년 사법연감)였다. 이른바 ‘황혼이혼’이다. 2010년 처음 3만건을 넘어선 황혼이혼은 해마다 늘어나 2017년 3만3000건대에 진입했다. 황혼이혼은 기대수명 증가로 인한 고령화사회의 한 단면이다. 결혼 이후 부부가 함께 지내야 하는 기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혼에는 현실적 문제가 뒤따른다. 재산분할이나 미혼 자녀의 출가 같은 일들이다. 이런 문제로 망설이는 이들에게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 ‘졸혼(卒婚)’이다. 문자 그대로 결혼을 졸업한다는 의미다. 2004년 일본 에세이스트 스기야마 유미코가 펴낸 <졸혼을 권함>이라는 책에서 처음 등장했다. 법적 혼인 상태는 지속하되, 부부가 서로 간섭하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생활방식을 가리킨다. 별거하거나 생활공간을 분리하되, 대부분 정기적으로 만나며 관계를 유지한다. 가족 해체에 따르는 ‘리스크’는 최소화하면서 독립적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펴낸 ‘2018 은퇴백서’를 보면, 조사 대상인 25~74세 2453명 가운데 남성은 22%, 여성은 33%가 졸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몇 해 전 배우 백일섭씨(75)는 방송에 출연해 졸혼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소설가 이외수씨(73) 부부도 결혼 43년 만에 졸혼을 선택했다고 한다. 여성지 우먼센스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별거에 들어간 이씨 부부는 이혼을 논의하다 최근 졸혼으로 합의했다. 헌신적 내조로 잘 알려진 부인 전영자씨(67)는 “제 인생이 참 괴롭고 고단했다. 더 늙기 전에 집을 나와 무언가 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씨는 강원 화천에, 전씨는 춘천에 거주하고 있다.

결혼식 주례사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의 시대는 이제 종언을 고하고 있다. 졸혼이든 해혼(解婚)이든 휴혼(休婚)이든 선택지는 다양하다. 부부의 충분한 공감과 합의만 전제된다면.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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