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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발생한 강원 고성·속초와 강릉·동해 산불은 매서운 바람을 타고 시간당 무려 약 5.1㎞의 속도로 산림을 집어삼켰다. 강풍 속에서 쉴 새 없이 산림청 헬기가 물을 뿌리고 산불 특수진화대원들이 불타고 있는 산림에 뛰어들어 주불을 잡고, 국군 병사들은 갈퀴나 등짐펌프로 잔불을 잡아냈다. 소방대원들은 산불로부터 주택과 시설물을 보호하는 데 힘썼다. 산림과 인명, 재산 피해가 컸지만, 산불 관계기관이 ‘협업’을 통해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한 결과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유관기관이 협업으로 산불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불예측분석센터’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강한 바람에도 하늘을 자유자재로 나는 드론은 정밀 열화상 탐지장치를 장착하여 화선의 위치와 이동경로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어 산불 진행방향 및 산불 강도 등을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게 해주었다. 파악된 산불 상황은 국가위기관리센터, 행정안전부 등과 실시간 공유되고 이를 바탕으로 현장대책본부는 진화인력, 진화장비, 소방장비 등을 적재적소에 투입한다. 이러한 과학적 시스템이 있었기에 불시에 발생하고 확산속도가 빨랐던 이번 산불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었다.

4일 오후 7시 17분께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일대 산불이 확산되고 있다. 불길이 하늘을 뒤덮고 있다. 연합뉴스

이처럼 산불의 적기 진화를 위해 중요한 것은 산불 발생 상황을 분석하고 산불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를 위해서는 수종, 산지지형, 풍향 및 풍속 등에 대한 기초 자료가 축척되어야 하며, 이를 종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기술도 필요하다. 

최근 기후변화 현상과 산림조건의 급격한 변화는 산불 환경을 악조건으로 내몰고 있다. 따라서 빈번히 발생하는 대형 산불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항구적 접근법을 찾아야 한다. 산불 발생에는 크게 기상, 지형, 산림(연료)의 세 가지 요소가 관여하는데, 이 중 우리가 관리할 수 있는 요소는 산림뿐이다. 즉 산불 발생 이전에 산림 관리를 통해 탈 수 있는 물질 자체를 잘 관리하는 게 가장 확실한 산불 대응일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건강한 숲을 가꾸는 것에서부터 산불 대응을 시작한다고 볼 수 있으며, 지속적인 산불 조심 계도, 과학적인 예측과 발생 시 대처 방안, 산불 이후의 피해조사와 복구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산림을 잘 알고 연구해온 산림과학자들의 노하우와 과학기술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이다. 

이번 산불 이후 국립산림과학원은 아리랑 위성에서 촬영한 산불 피해지 영상을 통해 산불 피해면적과 특성을 상세히 파악하였고, 자체 개발한 드론으로 10㎝급의 정밀한 영상 정보를 취득하였다. 이러한 피해지 정보는 정부 합동조사단에 제공되어 올바른 산림 복구계획을 수립하는 데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앞서 1996년 발생한 고성 산불 피해지와 2000년 동해안 산불 피해지를 20년 이상 모니터링한 자료는 이번 산불 피해지의 향후 산림생태계 및 자연환경, 지역 주민의 여건을 반영한 산림 복원계획 수립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산불의 방제, 예측 및 산림 복원까지 아우르는 산림과학 기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전문인력의 충원과 산불 예측 및 진화에 특화된 장비의 도입을 위한 적정한 예산 투입이 필요하다. 또한 산림의 조성·관리부터 시작하는 예방 활동, 진화체계 구축 및 산림 복구의 전 과정이 일원화된 형태로 통합관리되어야 한다.

<전범권 | 국립산림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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