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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이번 선거에서 당의 존폐를 논해야 할 정도의 패배를 경험한 자유한국당은 비대위 체제 출범을 예고했지만 계속되는 당내 혼란으로 당의 앞날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단 한 명의 단체장도 당선시키지 못한 바른미래당 역시 표류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반면 여당인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17명 중 14명, 기초단체장 226명 중 151명을 당선시키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일각에서는 지역균열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정치지형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지역주의 균열에 실질적인 변화가 왔는지를 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번 선거는 그간 우리 선거를 좌우해 왔던 영호남 지역주의, 세대균열, 진보·보수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거의 작동하지 않았던 선거이기 때문이다.

6·13 지방선거는 한마디로 촛불혁명의 연장선에 있었던 선거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전 정부 국정농단의 책임을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촛불혁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구태를 벗지 못한 정치세력들에 대한 응징의 의미를 강하게 띠었다. 혹한에 국민들이 들었던 촛불은 대통령 하나 바꾸는 것만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었다. 촛불혁명을 이끈 힘은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고 한국 민주주의에 완전히 새로운 옷을 입히고자 하는 국민적 열망이었다. 1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는 높은 대통령 지지율은 국민들이 새로운 정부에 이러한 열망을 실었고 아직 그 기대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선거는 국민의 의지와 열망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야당들에 대해 국민들이 가한 철퇴였던 것이다. 여기에는 지역도 세대도 이념도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선거를 지역주의가 타파된 선거라든가, 민주당이 전국정당의 토대를 구축한 선거라든가 하는 식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대통령의 지지율에 편승한 선거였고, 남·북·미 간 정상회담 및 평화 분위기의 영향을 크게 받은 선거였으며, 기존 적폐를 벗지 못한 정치세력에 대한 실망과 질책이 가장 크게 작용한 선거였다.

선거를 끝낸 정치권에는 수많은 개혁과제와 민생법안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한반도의 그림을 바꿔갈 판문점선언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해야 한다. 그러나 제1야당으로서의 기능이 마비된 자유한국당, 대규모 정계개편이 예상되는 정치권, 정상화는 고사하고 원구성조차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국회가 우리 앞에 있다. 지금의 모습으로는 국민의 기대를 담아내기 힘들다.  한국 국민은 지금 과거 어느 때보다 정치권을 날카로운 시각으로 평가하고 상벌을 내릴 준비가 되어 있다. 촛불, 탄핵, 대선, 남북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지방선거, 지난 1년 반 동안 우리 국민은 굵직한 경험들을 통해 고도의 정치적 학습을 해왔다. 눈과 귀를 막으면서 국민들을 동원하는 과거의 방식은 이제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 전체의 변화와 혁신이 요구된다. 여기에는 민주당도 예외가 아니다. 제1정당으로서 민주당은 야당의 협력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내어 명실공히 민생중심 정당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이번 선거로 거의 모든 지방정부와 의회를 책임지게 된 만큼 국민의 열망을 제대로 담아내야 할 것이다. 또한 지방선거 공천과정에서 보여주었던 구태에서 벗어나 당내 민주주의와 혁신에 앞장서지 않으면 국민들의 기대가 큰 질책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선거 후폭풍이 한동안 몰아칠 것으로 전망된다. 야당들은 쇄신의 방향조차도 잡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평화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중요한 시기에 국회와 정치의 정상화는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 국민은 당리당략적 정치셈법으로만 국회를 운영하고자 하는 정치세력에 대해 제재를 가하고 가차 없이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보수야당은 전면쇄신을 바탕으로 건전한 보수정당으로 거듭나고 여당은 혁신을 이끌면서 여야가 생산적인 경쟁과 협력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 하겠다. 부디 정치권은 이번 선거의 결과를 제대로 읽기 바란다.

<이소영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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