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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당시엔 중국 소비자들이 국내 온라인 쇼핑몰에서 ‘천송이 코트’를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이 부분을 책임지라면 책임지겠습니다.”

4일 금융위원회의 한 실무자는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20일 ‘규제개혁 끝장토론’에서 “공인인증서 탓에 중국에서 천송이 코트를 살 수 없다”고 말할 것이라는 점을 사전에 알았지만 문제가 없다고 오판했던 것이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전지현(천송이 분)이 입고 있는 '천송이 코트'


금융당국은 이후 후속대책 논의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알았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하는 대신 5월 ‘30만원 이상 공인인증서 의무사용 폐지’ 등을 내놓았다. 공인인증서 존폐에 관한 검토는 이미 수년 전부터 진행됐고, 의무 조항 삭제로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러자 지난달 24일 박 대통령의 주문 수위는 더 높아진다. “(공인인증서 관련해) 현장에서 변화를 못 느낀다. 또 중국처럼 우리도 온라인 간편결제 시스템을 도입하지 못하면 외국 업체에 빼앗길 수 있다.” 금융위는 이번엔 중국 알리페이처럼 국내 전자결제대행업체(PG)에 카드사의 고객 핵심정보를 저장할 수 있도록 허용키로 한다.

‘배가 산으로 간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다. 미래창조과학부도 “9월 액티브X 대체기술을 도입하겠다”는 지키지도 못할 내용을 내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달라진 건 없다. 이런 상황이면 박 대통령이 조만간 또 “중국인이 아직도 천송이 코트를 살 수 없다”고 질책할 판이다.

중국 소비자가 결제 시스템 탓에 천송이 코트를 못 산다는 대통령의 말은 틀렸다. 쇼핑몰 업체들의 사업적 판단에 따른 불편에 가깝다.

주무부처는 상황을 정확하게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실현 가능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게 진짜 책임지는 자세다.


홍재원 경제부 기자 jwh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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