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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없다는 말로도 모자란다. 수백 명의 목숨이 달린 경각의 순간에 “깜빡 잊고” 구조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공무원이 있다. 구해야 할 사람이 얼마나 되는 줄도 모른 채 ‘먹통 출동’을 했다는 구조대원도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해양경찰의 부실 대응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그러나 당사자들의 법정 진술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드러나면서 다시 한번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제 광주지법에서 열린 세월호 선원들에 대한 재판은 울분과 탄식으로 가득 찼다. 증인으로 출석한 목포해경 소속 123정 김모 정장의 황당한 증언 때문이다. 해경 123정은 세월호 침몰 당시 가장 먼저 사고 해역에 도착하고도 적극적 구조에 나서지 않아 비판을 받아왔다. 법정에서 김 정장은 상부의 선체 진입 지시에 따르지 않은 데 대해 “당황해서 깜빡 잊었다”고 진술했다. 사고 초기 “퇴선 방송을 했다”고 허위 주장을 했던 그는 “거짓말해서 죄송하다”며 사실을 털어놨다. 방송을 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그런 훈련을 안 해봐서 생각 못했다”고 답했다. 김 정장이 “(해경에서 일한) 34년간 침몰사고 관련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하자 방청석에서는 긴 한숨이 새어나왔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당시 헬리콥터를 타고 출동했던 해경 항공구조사들은 “선내에 다수 승객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증언했다. 이들 역시 세월호 침몰과 같은 대형 사고에 대한 훈련은 받지 못했다고 했다.

세월호 모든 실종자들이 가족품으로 돌아오기를, 특별법 제정으로 세월호 진상이 규명되기를, 세월호 참사가 잊혀지지 않기를 기원하며 경기 안산 단원고를 출발해 전남 진도 팽목항을 거쳐 교황이 방문할 예정인 대전까지 걸어서 순례를 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김학일씨와 이호진씨가 14일 순례를 마치고 대전 유성성당에서 순례를 함께해 준 사람들에게 큰절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앞서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단원고 생존 학생들도 해경의 무능을 생생히 증언한 바 있다. 해경은 그럼에도 자성하기는커녕 거짓말을 하고 근무일지를 훼손하는 등 은폐·조작을 시도했다고 한다. 기막힐 뿐이다. 이게 시민의 세금으로 녹을 먹는 공직자들이 할 일인가. 검찰은 구조 부실의 실체를 수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은폐·조작 과정에 해경의 윗선이 개입했는지도 철저히 파헤쳐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도 이제는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비유하며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옳다. 해경은 국가기관이고, 해경의 무능만으로도 국가의 무능은 덮을 수 없다. 참사의 최종 책임을 유병언 일가에게 돌리려던 시도도 사실상 수포로 돌아가지 않았는가. 집권세력이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고 겸허하게 인정할 때 진상 규명과 상처 치유의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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