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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국제대회를 앞두고 한국 야구대표팀을 취재할 때였다. ㄱ선수가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에 얽힌 사연을 들려줬다. 대표팀 고참 선수가 대표팀 전원에게 선물한 것으로, ㄱ선수 말에 따르면 개당 80만원가량의 고가 제품이었다. 대표팀 엔트리에 포함된 선수는 28명이었다.
기자들은 고참 선수의 씀씀이에 놀라면서도 그 선수의 지난 몇 년간 연봉이 합계 수십억원이라는 점을 거론하며 “그런 선물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ㄱ선수는 손사래를 치며 “많이 번다고 다 그렇게 베풀지 않는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하지만 모든 곳간에서 인심나는 것은 아니며, 곳간 문을 열라고 타인이 강요할 수도 없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의료진과 코로나19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각종 기부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미국프로야구 텍사스의 추신수가 이 행렬에 동참했다. 추신수는 개막이 연기돼 생활고를 겪고 있는 텍사스 소속 마이너리거 191명 전원에게 1인당 1000달러(약 120만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일종의 ‘재난소득’을 주겠다는 것인데 근래 들어본 기부 소식 중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참신한 기부 방식이다. 텍사스 마이너리거들이 추신수를 ‘일류(first class)’라고 칭송하며 감사를 표한 것도 지나친 일이 아니었다.
기부 방식이 창의적이기로는 피츠버그 선수들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피츠버그 선수들은 홈구장인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PNC파크 인근에 있는 피자 전문점 2곳에서 피자 400여판을 구입해 지역 종합병원 의료진에게 보냈다. 코로나19에 맞서 싸우고 있는 의료진을 응원하는 동시에, 매출이 크게 감소한 지역 상인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선수들은 지역사회에서 받았던 사랑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이 같은 일석이조의 기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처럼 곳간을 여는 스포츠 스타들은 자신들의 부와 명성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팬과 지역사회를 존중할 때 자신도 존중받고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을 고민하고 실천했다. 난세가 스포츠 스타들의 품격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미국 육상 높이뛰기 국가대표 숀티 로위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미국·유럽에서 시행 중인 자택 대기 조치를 ‘각자 고립돼 지냄으로써 세계가 하나 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이웃과 국가, 세계의 안전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시민들이 정부의 자택 대기령을 기꺼이 따르고 있다는 의미다.
국내 코로나19 발생이 두 달을 넘어가면서 일상 복귀를 바라는 시민들의 마음도 점점 더 간절해지고 있다. 해외 유입 감염 사례가 늘어 잔불이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2주 자가격리를 위반하는 몰지각한 행태에 관한 보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자가격리처럼 기본적인 수칙을 위반하는 것은 품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자신의 밑바닥을 드러내는 일이다.
이웃과 국가, 세계의 안전을 위해 지켜야 할 것은 지키는 시민의식이 요구되는 때다. 곳간을 열어 통 크게 기부하는 것만큼 큰 결단이 필요한 일도 아니지 않은가.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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