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KBO 단장들이 3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KBO회관에서 긴급실행위원회를 열고 코로나19 예방 관련 정규리그 운영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참석하지 못한 일부 단장들은 화상을 통해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2001년 9월11일, 여객기 두 대가 세계무역센터 빌딩에 충돌했다. 뉴욕 양키스 데릭 지터는 “맨해튼에 차가 한 대도 없었다. 현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고 9·11 직후 분위기를 떠올렸다. 미국 내 모든 것이 멈췄다. 야구도 예외일 수 없었다.
양키스 선수들은 야구장 대신 제이콥 컨벤션 센터를 찾았다. 피해복구 자원봉사자들과 실종자 가족들이 모인 곳이었다. 조 토레 감독은 “우리가 여기에 오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저 야구하는 사람들일 뿐인데”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양키스 선수들을 향해 팬들이 모여 들었다. 사인 요청 사진 속 실종자들은 양키스타디움에 있거나, 양키스 모자를 쓰고 있었다. 토레 감독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고 했다. 물론 야구였다.
야구는 테러 7일 뒤 다시 시작했다. 뉴욕에서의 첫 경기는 테러 10일 뒤 뉴욕 메츠가 먼저였다. 주전 포수 피아자는 그 경기에서 홈런을 때렸다. 양키스는 이기고 또 이겼다. 그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오클랜드와의 디비전시리즈 1차전, 테러 현장에서 몸 바쳐 애쓴 소방관들이 시구를 했다. 양키스는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승 116승을 거둔 시애틀도 꺾었다. 월드시리즈 7차전 승부 끝 애리조나에 졌지만, 5차전에서 나온 지터의 끝내기 홈런은 뉴욕 팬들을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2013년 4월15일, 마라톤대회 결승점에서 폭발물 2개가 터졌다. 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보스턴 마라톤을 향한 테러였다. 3명이 사망했고, 260여명이 다쳤다.
야구는 계속됐다. 테러범 체포 이후 첫 홈경기였던 4월20일, 보스턴 레드삭스 주장 데이비드 오티스가 마운드에서 마이크를 들었다. “우리 지금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있다. 레드삭스가 아니라, ‘보스턴’이다. XX, 우리가 XX 사랑하는 도시 말이다. 누구도 우리의 자유를 위협할 수 없다. 우리는 강하다.”
테러 다음날 3루수 윌 미들브룩은 트위터에 “우리 보스턴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겠다”며 #BostonStrong을 붙였다. 이는 시즌 내내 팀과 도시의 상징이 됐다. 전년도 꼴찌로 추락했던 보스턴은 하나로 뭉쳤고 진짜로 강해져 월드시리즈 우승을 따냈다. 오티스의 월드시리즈 타율은 거짓말 같은 0.686이었다.
2013년 11월3일, 저팬시리즈 7차전 9회초 마운드에 다나카 마사히로가 올랐다. 전날 6차전에서 160개를 던진 라쿠텐의 에이스였다. 다나카가 요미우리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는 순간 선수도 팬들도 모두 눈물범벅이 됐다. 라쿠텐은 2011년 닥친 동일본 대지진의 최대 피해지역 센다이를 연고로 하는 팀이었다. 창단 뒤 첫 우승이었다.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대지진으로 고난을 당한 여러분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해 지난 3년간을 싸워왔다. 팬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기적처럼 찾아온, 3·11 지진 3년 뒤 11·3 우승이었다.
야구는, 스포츠는 힘이 된다. 코로나19를 이겨내고, 시즌이 시작되면 삼성 라이온즈의 #힘내자_대구 #힘내자_경북은 진짜 힘이 될 수 있다.
<이용균 스포츠부>
'주제별 > 스포츠와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총선에서 홀대받는 ‘스포츠의 사회적 가치’ (0) | 2020.03.31 |
---|---|
[여적]크리스마스 ‘가을야구’ (0) | 2020.03.31 |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코로나가 물러간 이후의 스포츠 (0) | 2020.03.03 |
[기자칼럼]일상의 쳇바퀴가 멈췄을 때 (0) | 2020.02.25 |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스포츠계 혁신, 이제 공은 문체부로 (0) | 2020.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