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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자유한국당 대표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김창길 기자

4·15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의 후신인 미래통합당 후보로 지역구 출마에 나서는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는 출마의 변에서 “대한민국에서 관찰한 것 중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진보세력은 통일주도 세력이고 보수세력은 반통일 세력’이라는 이분법적 관점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통일에 대한 엇갈린 관점과 서로에 대한 증오심으로 남남 갈등에 빠져 있으면 영원히 분단국가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과거 보수정부 시절 ‘통일 대박’ 등을 외치며 북한 붕괴와 흡수 통일을 지향했고, 소위 진보정부에선 오히려 남북 간 교류협력에 방점을 두고 점진적 통일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태 전 공사의 말이 정확하다고 할 순 없다. 다만 통일과 북한에 대한 시각차가 우리 사회의 주요 갈등 소재로 작용한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미래통합당이 태 전 공사를 앞세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없고, 북·미 비핵화 협상과 남북관계 진전의 선순환을 추구하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은 틀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것이다. 이런 비판은 지금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나 보수정당 회의에서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미래통합당이 태 전 공사를 데려온 것은 그가 김정은 정권하에서 불과 몇년 전까지 충성을 바치다 귀순한 고위층 출신이라는 정치적 상품성을 고려한 것이다. 직간접적으로 목도한 김정은 체제의 취약성을 폭로하고,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믿는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선봉에 세우기에 태 전 공사만큼 이용 가치가 높은 인물도 드물기 때문이다. 황교안 대표는 “북한에 일어난 최근의 일까지 아주 자세하게 알고 있는 역량 있는 분”이라며 열렬히 환영했다.

미래통합당의 태 전 공사 영입은 유감스럽다. 이 당은 헌법이 보장하는 피선거권을 내세워 대한민국 국민인 태 전 공사에게도 출마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자신들이 태 전 공사를 ‘모셔온’ 이유와 그것이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이 존재함에도 보편적 잣대를 들이대 상황을 호도하려는 주장일 뿐이다. 태 전 공사는 생계형 탈북민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이유로 망명한 사람이다. 북한으로부터 망명한 사람을 공직선거 후보로 추천한 미래통합당이 향후 집권하게 된다면 그 정부는 북한과 대화가 가능할까. 태 전 공사는 테러 우려가 큰 ‘가’급 신변보호 대상이어서 태 전 공사가 선거 유세에 나서려면 경찰 수십명이 붙어야 한다. 만에 하나 유세 중 테러 위협이라도 발생한다면 그것이 북측 소행이냐 아니냐를 둘러싼 논쟁을 시작으로 소모적 논란이 가열될 게 뻔하다. 시중엔 미래통합당이 내심 그런 상황에 따른 ‘북풍’을 기대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다. 이미 미래통합당에선 “자기 형도 대명천지에 화학가스로 죽이는 사람인데, 김정은이 보기엔 태영호가 눈엣가시 아니겠나”(정진석 의원, 지난 18일 국회 외통위) 같은 자극적 언사들이 등장한다.

탈북민들이 자신들의 권익 수호를 위해 정치활동을 하는 것 자체를 막을 순 없다. 3만3000여명에 이르는 탈북민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포용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그러나 정치권이 선거를 위해 북한 이슈를 이용하고 탈북민을 끌어들이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주영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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