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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자가격리 대상인 해외 입국자를 위해 운영하고 있는 KTX 전용칸에 한 해외 입국자가 홀로 앉아 있다. 코레일은 해외 입국자와 일반 승객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용칸과 일반칸 사이의 한 칸은 빈 객실로 운영한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자가격리자의 무단이탈을 막기 위해 정부가 위치 확인용 손목밴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상황이 방역에 중대한 고비라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어렵사리 통제를 유지했던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엿보인다. 

하지만 손목밴드는 법적 근거 없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나라에서 쉽게 용인해서는 안된다.  위반자에게 법과 규정에 근거한 적절한 제재를 가할 수는 있지만 모든 격리자에게 위치추적 장치를 단다는 것은 이들을 모두 잠재적 위반자로 간주하는 명백한 차별이다.  

바이러스를 막는 것만이 정부와 시민사회가 지향해야 할 유일한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인권과 자유, 법치를 지키는 것도 방역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같은 시민사회의 가치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과 무수한 희생을 통해 인류가 이뤄낸 업적이다. 방역을 이유로 이 같은 가치에 역행하는 조치를 쉽게 허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    

정부는 코로나 사태 발생 이후 국민들에 대한 통제를 최소화하고 개방을 유지하면서 바이러스 확산을 막고 신속하게 감염자를 치료하는 기조를 유지해왔으며 이를 통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국제사회가 한국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도 이처럼 인권과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바이러스를 통제하는 방법이 가능하다는 것을 ‘한국적 자유주의 모델’을 통해 입증했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는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금기시하던 국가통제, 공적영역의 확대, 전자 프라이버시 침해 등이 일상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방역정책에는 이미 다른 나라들이 참고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당한 수준의 통제와 감시가 포함돼 있다. 또한 한국의 상황이 국민의 헌법적 기본권을 제한해야 할 만큼 절망적인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 격리자가 될 수 있다. 언제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갑작스럽게 단절되고 고통스러운 2주를 보내야 할지 모른다. 격리자들은 ‘바이러스 숙주’가 아니라 같은 사회구성원들이며 피해자들이다. 

이들에게 손목밴드를 채워 일탈을 막으려는 차별적 발상보다 격리기간을 잘 견뎌내도록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는 것이 위기 극복에 필요한 성숙한 시민의식일 것이다.

<유신모 정치부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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