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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황금연휴’를 시작하던 지난달 1일 부모와 놀이공원에 놀러온 4살짜리 아이가 숨졌다. 경기 과천시 서울랜드 주차장에서 SUV 차량이 부모와 함께 있던 아이를 덮쳤다. SUV 차량에는 운전자가 없었다. 경사가 진 주차구역에 차를 세운 운전자는 사이드브레이크를 제대로 채우지 않은 채 내렸다. 이 사고로 아이는 숨졌고 엄마와 아빠도 다쳤다. 엄마는 당시 임신 20주인 상태였다.

지난 6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및 제안’란에 글이 올라왔다. 한 달여 전 서울랜드 주차장 사고로 아이를 잃은 엄마라고 했다. 아이 엄마는 “가해자는 기어를 드라이브(D)에 넣고 사이드브레이크도 안 잠근 채 자신의 가족과 매표소에 갔다”며 “그 끔찍한 일은 그 사람이 잘못한 게 맞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 엄마가 청와대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이유는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원해서가 아니었다. 아이 엄마는 “더 이상 자신과 같은 불행을 겪는 사람이 없게 하도록 법을 만들어 달라”며 청와대에 청원을 넣었다.

아이 엄마는 “매일 울며 이 지옥을 지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아이들에게도 닥칠 수 있는 불행을 막으려 했다. 아이 엄마는 “첫째로 경사진 주차장 특히나 아이들이 많이 있는 마트와 놀이동산 등 다중이용시설 주차장에는 사이드브레이크나 제동장치에 대한 안내문과 방송 등이 법으로 의무화되길 바란다”고 했다. 둘째로는 “자동차 사이드브레이크나 제동장치로 인한 사고 시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있길 바란다”고 했다.

관련법은 이미 국회에 제출되어 있다. 지난 2월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이 대표발의한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이 9월에 상정됐다. 이 법은 ‘경사진 곳에 정차하거나 주차하려고 하는 자동차의 운전자는 고임목을 설치하거나 조향장치(操向裝置)를 도로의 가장자리 방향으로 돌려놓는 등 미끄럼 사고의 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예산안 심의와 ‘더 중요한 법률’ 등에 밀려 온전히 처리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아이 엄마는 호소했다. “경사가 있는 주차장에 주차 방지 턱이라도 있었으면 어땠을까요. 누군가 주차방지턱을 타넘는 차를 보며 소리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경사진 곳이니 사이드브레이크를 반드시 채우라는 방송이나 안내문이 곳곳에 있었으면 어땠을까요. 이 끔찍한 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청원했다. “이런 끔찍하고 어이없는 사고는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됩니다. 지금 제 아이가 있는 납골당에는 사이드브레이크로 인한 사고로 천국에 간 아이가 또 있습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하루 수백건의 ‘국민청원 및 제안’이 올라온다. 이 중 ‘30일 동안 20만명 이상의 국민들이 추천’한 청원에 대해서만 각 부처 장관이나 대통령 수석 비서관, 특별보좌관 등이 답변한다. 이런 절차를 거쳐 지난 9월에는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비서관과 김수현 사회수석비서관이 ‘소년법 개정청원’에 답변을 내놓았다. 지난 9월30일부터 10월30일까지 23만5372명의 청원을 받은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 합법화 도입’은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다음달 6일 마감되는 ‘조두순 출소반대’ 청원은 이미 40만명을 넘겼다.

지난 6일 올라온 ‘경사진 주차장에 경고문구 의무화와 자동차 보조제동장치 의무화를 요청합니다’란 청원은 열흘이 지난 15일까지 5만명도 모으지 못했다. 마감시한인 12월6일까지 20만명을 채우지 못하면 아이를 잃은 엄마의 청원은 그대로 사라질 것이다.

아이 엄마는 청원글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아이를 더 낳는 세상이 아니라 있는 아이나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원합니다. 제 아이처럼 이렇게 허망하게 가는 아이가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됩니다.” 청와대와 정부의 답변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책사회부 홍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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