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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교인으로서 이런 메일을 보내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 하는 망설임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보하는 것이 한국 개신교회의 앞날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며, 하나님도 이를 기뻐하실 일이라 판단하여 다소간의 두려움 속에 펜을 듭니다.’

며칠 전 받은 독자의 e메일은 이렇게 시작했다. 기획재정부가 종교인과세에 ‘종교인활동비’는 제외하는 내용을 담은 입법예고를 했다는 보도를 한 다음날이었다. 종교인활동비가 입법화되면 종교인들이 세금을 탈루할 수 있는 합법적인 길이 열린다. 임금을 적게 받고 활동비를 대폭 늘려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실제 일부 대형교회는 목사들에게 증빙 않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교회 명의의 법인카드를 준다. 종교인활동비는 그래서 목사님의 ‘특수활동비’로 불린다.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과 개신교 대표들이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CCMM빌딩에서 열린 종교인 과세 간담회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형교회에 다닌다는 이 독자도 속이 많이 상했던 모양이다. 그는 e메일을 통해 “제가 다니는 교회는 목사님에게 지급하는 급여를 더 올려주기로 했는데 그만큼 선교활동 등 다른 곳에 쓰일 헌금의 일부가 전용되는 셈”이라며 “박봉에 시달리는 부목사님, 전도사님, 강도사님이라면 이 같은 소득대납에 전혀 이의가 없지만 담임목사님은 이미 고소득자인데, 소득세만큼은 자신이 납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참 씁쓸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제보성 메일을 보내는 것이 마음 편하지 않지만 이와 관련된 취재를 꼭 부탁드린다”고 끝맺었다. 종교인들의 절세 꼼수는 신실한 신자들의 자부심과 신앙심마저도 흔들고 있었다.

입법예고안은 종교인 특혜 보물찾기 같다. 파면 팔수록 숨어 있는 특혜가 또 나온다. 소속 종교단체에서 받은 돈만 과세하기로 한 것도 크다. 다른 교회나 절에 가서 설교나 설법을 하고 받는 돈에는 세금을 매기지 않겠다는 얘기다. 입법예고를 통한 추가적인 조치가 없어도 종교인은 이미 일반인보다 세금을 적게 내도록 설계됐다. 근로소득이 아닌 기타소득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하고 경비의 80%까지 비용으로 인정해줬다. 그 결과 원천세액 기준으로 종교인들은 일반인의 절반밖에 안 낸다. 뭔가 이상해서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하려 해도 할 수가 없다. 입법예고안은 교회 지출을 작성한 교회회계와 목사에게 건넨 금품을 기록하는 목사회계를 따로 작성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면서 교회회계는 들여다볼 수 없도록 막았다. 모태신앙을 가졌다는 국세청 관계자는 “차라리 세무조사 금지를 못박지, 눈 가리고 아웅 하기라 부끄럽다”고 말했다.

국회는 한술 더 떴다. 국회는 지난 1일 본회의에서 기타소득으로 신고한 종교인들에게도 근로·자녀장려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노동’이 아니라서 근로소득세를 내지 못하겠다고 하더니 근로·자녀장려금은 깨알같이 받아간다. 그야말로 ‘그뤠잇’이다.

종교인과세를 누더기로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면 감탄이 나온다. 누가 이리도 세세히 절세법을 만들었을까. 종교인과세를 주도한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해 아주대 총장 때 680만원의 기부금을 영동교회에 냈다. 세무업계에 문의해봤더니 그의 지난해 연봉(1억8600만원)을 감안하면 종교기부로 돌려받은 소득세가 110만원(지방세 포함)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부총리가 개신교 신자인지는 모르겠으나 시늉만 하는 짓거리 가증스럽다’는 의견이 올라와 있다.

리얼미터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8.1%가 종교인과세를 찬성한다. 2014년(71.0%)보다 찬성 응답이 높다. 이 같은 지지를 받고도 누더기 과세를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딴 식으로 과세하려면 차라리 종교인과세를 하지 말자.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평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가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이다. 정부에 묻고 싶다. 종교인과세는 과연 이 국정철학에 부응하는가.

<경제부 | 박병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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