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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포츠계에선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선수가 거의 없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추정된다. 관심이 전혀 없거나, 관심과 의견이 있더라도 그것을 표명했을 때 뒤따를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달리 미국 스포츠계에는 사회 현안에 대한 의견을 밝히는 선수들이 꽤 있다. 미국프로농구(NBA)의 간판 스타 르브론 제임스는 최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두 장의 사진을 올렸다. 한 장은 지난달 25일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 데릭 쇼빈의 무릎 밑에 깔려 있는 사진이고, 다른 한 장은 2016년 미국프로풋볼(NFL) 선수였던 콜린 캐퍼닉이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의미로 무릎을 꿇고 있는 사진이었다. 

르브론은 사진과 함께 “이게 (캐퍼닉이 무릎 꿇은) 이유다. 이제 이해하겠나”라고 썼다. 플로이드를 죽음으로 몰고 간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을 비판하고, 인종차별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킹’으로 불리는 르브론은 경기장 밖에서도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미국 선수라고 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서 사는 건 아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 것은 보수적인 한국 사회든, 열려 있는 미국 사회든 마찬가지다. 유색인종이라면 더욱 그렇다. 육상의 토미 스미스와 존 칼로스는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남자 200m에서 각각 금메달,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들은 흑인의 힘을 표현하기 위해 시상대 위에서 검은 장갑을 끼고 주먹을 들어올렸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이 행위가 정치적 의사표현을 금지한 올림픽헌장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그날로 선수촌에서 두 선수를 내쫓았다. 르브론이 언급한 캐퍼닉도 경찰의 흑인 과잉진압에 항의해 경기 전 국가 연주 때 무릎을 꿇었다가 사실상 은퇴당했다. NFL 구단들은 이 행위를 비애국적, 반미적인 것으로 간주해 캐퍼닉과 계약하기를 거부했다. 

2015년 메이저리그에서 은퇴한 토리 헌터는 선수 시절 당했던 인종차별을 이번 플로이드 사건이 터진 후에야 고백할 수 있었다. 그는 보스턴의 홈 펜웨이파크에서 팬들에게 인종차별적인 욕설을 여러 차례 들었다고 털어놨다. 현역으로 뛸 때는 논란의 중심에 서고 싶지 않아 그런 욕설을 들어도 참고 넘겼을 것이다. 

불의에 항거하는 것은 이처럼 미국에서도, 스타들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신이 가진 것을 희생하면서, 대의를 위해 일어선다. 다행히 역사는 이런 용기를 모른 척하지 않았다. NFL 사무국은 캐퍼닉을 거론하진 않았으나 “선수들에게 더 일찍 귀 기울이지 않았던 건 잘못이었다. NFL은 인종차별과 흑인들에 대한 조직적인 억압을 규탄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보스턴은 사죄 성명을 내고 “헌터가 경험한 일은 실제로 일어난 것”이라고 인정했다. 

이 순간에도 스포츠로 이룩한 부와 명성을 사회를 위해 쓰려고 고민하는 선수들이 있다. 세상에 당연한 저항과 희생은 없다. 유명 스타들도 불이익 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정의를 위해 발언한다. 이들의 용기가 스포츠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들고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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