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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이면 서울시에 9개의 박물관이 새로 들어선다. 이미 서울생활사박물관, 서울우리소리박물관 등 5개가 개관했고 여기에 사진, 한식, 도성, 로봇 등 9개가 추가되어 총 14개가 된다. 서울시의 ‘박물관·미술관 도시-서울 프로젝트’ 일환이다.

많아도 적은 것이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역사와 기억과 사료와 교육이 총괄되는 공간이다. ‘국산사자음미실’에 걸쳐 모든 분야의 박물관이 있어야 한다. 이른바 ‘수도 서울’의 경우 이 정도의 역사와 문화와 인구 규모를 지닌 외국의 도시들과 비교할 때, 턱없이 부족하다.

박물관은, 동네 도서관이 그렇듯이, 그 개념과 활용 방안이 급속히 변하고 있다. 과거에 동네 도서관은 입시와 취업을 준비하는 ‘거대한 독서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박물관 또한 변화된 시민 생활의 다양한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라키비엄(Larchiveum)이라고 해서 도서관(Library), 기록관(Archives), 박물관(Museum)의 기능이 화학적으로 결합한 복합문화공간이 곳곳에서 시도되고 있다. 기존의 박물관이나 도서관이 기존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좀 더 다채로운 지식과 문화와 정보의 생산, 공유, 결합이 이뤄지는 양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의 의지를 격려한다.

아쉬운 것은, 서울시의 박물관 목록에 ‘스포츠’가 빠졌다는 점이다. 중앙정부가 건립 중인 ‘국립체육박물관’이 2022년 개관 예정이라고 하니, 그 정도면 되지 않느냐고도 할 수 있지만 전국적이고 총체적인 박물관과 ‘서울’에 집중하는 박물관은 규모와 관점이 다르다. ‘국립’은 고대 시대 이래의 스포츠 역사 전체를 다루며 특히 해방 이후 한국 스포츠의 굵직한 대회와 사건과 인물이 중심이 되는 전면적이고 총체적인 공간이다. ‘서울’의 스포츠가 사실상 스포츠 현대사의 전체이며 88 올림픽이나 2002 월드컵처럼 ‘거대 역사’로 확실히 정리되고 전시 가능한 면도 있다. 그러니 가뜩이나 사료도 부족한데 서울에 두 개의 스포츠박물관이 들어설 필요는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이는 ‘서울의 스포츠’를 ‘서울에서 벌어진 국제대회와 엘리트 선수들의 영광’이라는 식으로 본, 단견이다. 스포츠 외연을 스포츠 바깥으로 확대하고, 스포츠 ‘바깥’의 삶이 어떻게 스포츠와 연계해 한 시대의 삶이 이뤄졌는가, 그리하여 스포츠로 인해 삶의 공간은 어떻게 재편되었으며 그 재편의 돌진적 개발주의 시대를 통과하면서 어떻게 서울 시민들의 삶이 급속히 형질변경 되었는가를 살피는 것은, ‘서울스포츠박물관’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역사적인 경기와 그 경기를 뛴 엘리트 선수에 주목하는 게 아니라, 이를테면 ‘경성운동장(1925년)-서울운동장(1945년)-동대문운동장(1985년)-동대문디자인플라자(2014년)의 공간 변천을 통해 서울의 변화 양상과 그 일상문화의 강한 흔적들, 그 아래에 눌린 기억과 스쳐 지나간 경험 등 서울시의 현대사와 서울시민들의 집합적 생애사를 되돌아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올림픽과 강남, 월드컵과 강북 등의 문화지리적 탐사도 가능하다. 조기축구회와 이촌향도(1970년대), 야구와 지역문화(1980년대), 배드민턴과 서민문화(1990년대), 스포츠센터와 중산층 귀속의식(2000년대), 스포츠클럽과 도시재생(현재) 등 다양한 연구와 전시와 교육이 가능하다.

‘국립’이 잠실에 개관하니 ‘시립’은 상암월드컵경기장이나 옛 동대문운동장 인근에 개관해 여러 측면의 ‘균형’을 맞추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서울의 스포츠를 통해 아시아의 주요 도시들과 긴밀한 연구, 조사, 대화, 교류까지 가능하다. 이 또한 박물관의 고유 기능이다. 원래 스포츠가 ‘사회적 행위’인 만큼 이러한 발상은 도발적이고 의외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에 충실한 자연스러운 제기다. 스포츠를 ‘영광스러운 땀과 눈물’로만 재현하는 게 더 큰 문제다.

요컨대 스포츠를 ‘대회와 선수’로 국한하지 않고 폭넓게 확장하는 순간 무궁무진한 신세계가 열린다. ‘서울에서 벌어진 국제대회’로 하면 ‘국립’과도 겹치고 ‘국립’의 방대한 사료와 규모를 따라갈 수 없으며, 무엇보다 정부를 설득하기도 어렵고 시의회를 통과하기도 어렵다. 중앙정부의 ‘국립’과는 다른 맥락에서 과감히 스포츠 바깥으로 시선을 돌려서, 서울의 현대사를 ‘스포츠를 통해 재구성하고 조망’하는 박물관이라면, 마땅히 그 역사적·문화적 의의가 있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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