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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대도시 한 중학교에 재학했던 시절 한 선생님의 이상한 언행을 두고 학생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었다. 나이 지긋한 이 남자 선생님은 수업 도중 떠든 아이들을 혼낼 때마다 반드시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대답에 따라 어떤 아이는 벌을 섰고, 어떤 아이는 조용히 자기 책상으로 돌아갔다. 학기 초 학생들은 선생님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느 순간 학생 집이 좀 사는 동네면 떠들어도 봐주고, 그렇지 않으면 벌을 준다는 말이 나돌았다.


당시만 해도 그런 해석이 우습기만 했다. 대도시라고 해도 서울의 소위 8학군처럼 부자 동네와 학군이 연관되는 사회적 분위기(또는 실제 거주공간에 따른 계층적 분리)가 약했고, 아이들도 집안 형편에 따라 친구를 골라 사귈 정도로 영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둘째 아이의 유치원 추첨을 다녀오면서 20년도 더 된 이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아이는 운 좋게도 10 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당첨됐지만 문제는 유치원 내 희한한 갈등이었다. 추첨 직전 마이크를 잡은 원장은 “우리 원이 ㄱ동 아이들만 뽑는 거 절대 아닙니다”라고 거듭 공손하게 해명을 하는 게 의아했다. 알고보니 인근 ㄴ동, ㄷ동에 거주하는 아이들이 이 유치원에 오는 것을 이 동네 엄마들이 싫어하고, 반면 다른 동네 엄마들 입장에선 “똑같은 원비 내고 다니는데 무슨 차별이냐”며 원에 항의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관련 육아카페에는 이 문제에 대한 글들이 수없이 올라와 있었다.


한 유치원에서 학부모들이 내년도 입학생 추첨을 위해 줄지어 서 있다.(출처 :연합뉴스)


중산층으로 대변되는 분양아파트와 저소득층 거주지인 임대아파트의 반목은 이미 고전이지만 길 하나 사이에 두고 이 동네는 되고 저 동네는 안된다니, 우리 사회의 갈등이 이 정도까지 심화됐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최근 목동·잠실 등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행복주택은 현실적으론 결코 성사될 수 없고, 부자 동네 입장에선 성사돼서도 안되는 일이다. 유치원 추첨 다음날 정부는 결국 행복주택 지구 지정을 보류했다.


서울시가 은평뉴타운 등 새로 짓는 아파트에 대해선 임대와 분양 주택을 같은 동에 섞어서 배치하는 ‘소셜 믹스’를 시행하고 있지만 당초 의도한 ‘통합의 효과’보다는 오히려 소셜 믹스 단지를 기피해 집값이 떨어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어릴 적부터 사는 동네, 아파트 평수에 따라 다니는 유치원과 학교가 달라지고 있는데, 정부는 무작정 한 공간에서 같이 살게 하면 사회적 갈등은 저절로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소셜 믹스도, 행복주택도 좋지만 그보다는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연대의식의 가치와 협동의 소중함에 대해 어릴 적부터 가르치고 느끼게 해주는 교육에 근본적인 해답이 있을 듯하다.


문주영 전국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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