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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초청을 받아 1박2일로 전남 목포에 다녀왔다. 신안비치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하루 종일 목포 시내를 걸어 다녔다. 아침에 호텔을 나와 유달산을 바라보았다. 흐르는 구름이 암벽을 드러낸 유달산의 봉우리들을 스치며 지나가고 있었다. 발걸음은 무작정 유달산을 향했다. 단풍이 든 산 중턱에 정자가 보였고 그곳으로 인도하는 산책로로 들어섰다. 정자에 도달하니 병풍처럼 길게 펼쳐진 고하도가 보였다. 식민지 시기에 일본인들은 그 섬에서 면화를 대량으로 재배하여 내지로 송출했다.

목포와 해남을 연결하는 목포대교 위로 크고 작은 자동차들이 장난감처럼 지나갔다. 멀리 암태도가 보였다. 그곳은 일제강점기에 유명한 소작쟁의가 일어났던 섬이다. 마음 같아서는 유달산 정상을 향해 걸어 올라가고 싶었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바다를 바라보며 해안도로로 걸어내려 왔다. 오른쪽으로는 바닷가, 왼쪽으로는 유달산을 벗 삼아 걸었다. 간간이 낚시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바위에 세워진 인어상과 목포 개항 110주년 기념비도 보였다. 싱싱한 생선을 진열한 수산물시장을 지났고 높은 온도에도 견디는 벽돌을 만들던 ‘조선내화’ 공장 터도 지났다. 지금은 버려진 공장의 길가 건물에서는 젊은이들이 문화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과거 일본영사관으로 쓰였던 목포근대역사관.

목포는 영산강과 서해바다가 만나는 항구 도시다. 그러니까 선창 부근이 원도심이다. 그런데 영산강 하구언을 만들면서 하당이라는 광활한 매립지가 생겼고 그곳에 신도심이 건설되었다. 그 너머 남악에는 전남도청이 자리 잡았다. 구도심에 살던 사람들이 신도심으로 이사가면서 목포의 원도심은 다소 퇴색한 분위기였다.

먼저 과거 일본영사관이었던 건물에 자리 잡은 목포근대역사관을 찾아갔다. 유달산 자락에 붉은 벽돌로 지은 2층 건물이 보였다. 그곳에서 서울의 일본대사관 뒤에서 보았던 평화의 소녀상을 만났다. 식민지 시대 일본영사관 건물 앞이라 더욱 감회가 깊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목포의 역사는 식민지의 역사와 겹친다. 부산, 인천, 원산 등에 이어 개항한 목포는 호남평야의 쌀과 면화 등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기 위한 항구도시가 되었다. 유달산 자락에 잘 구획된 대지에 일본인들의 버젓한 주택들이 자리 잡았고 그 주변에 경찰서, 영사관, 동양척식회사, 일본인을 위한 학교, 우체국, 은행 등이 들어섰다. 박물관은 식민지 시기에 목포라는 도시가 어떻게 발전하고 근대적인 문물이 도입되었는가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식민지 시대에 한편으로는 근대적인 도시가 형성되고 새로운 문물이 도입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착취와 수탈이 진행되던 역사가 그곳에 있었다.

발걸음을 옮겨 성옥기념관과 이훈동정원으로 향했다. 성옥(聲玉)은 식민지 시기에 일본인이 창업한 ‘조선내화’를 해방 이후 불하받아 발전시킨 목포의 갑부 이훈동의 호이다. 성옥기념관에는 그의 일대기와 그가 수집한 국보급 미술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그는 일찍이 고온을 견디는 내화물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포항제철과 광양제철을 건설할 때 필요한 내화물을 공급하여 성공한 기업인이다. 기념관의 전시가 시작되는 첫 번째 방에는 그의 입지전적인 삶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다. 그 방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전시물은 이훈동 회장이 박정희 장군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긴장한 군인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군복 점퍼 차림에 별 두 개가 달린 모자를 쓴 박정희 장군 곁에 이훈동 회장 부부가 서 있었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 박 장군이 전국을 돌다가 목포를 방문했을 때 이 회장의 집 정원에서 찍은 사진이다. 대원군의 난초 병풍, 추사 김정희의 행서 병풍, 남농 허건의 금강산 산수화 등을 감상하고 기념관을 나와 부근에 있는 이훈동정원으로 향했다.

원래 식민지 시기에 쌀과 면화를 수출하여 축재한 일본인 최고 갑부가 살던 집인데 어느 국회의원을 거쳐 1950년 이 회장의 소유가 되었다고 한다. 저택에는 일본식 고급 가옥에 아주 세심하게 신경을 쓴 일본식 정원이 조성돼 있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입구에 작은 연못과 정원이 방문객을 환영한다. 그곳을 지나 왼쪽으로 들어서면 여러 수종의 나무들이 제각기 자리를 지키고 서 있고 군데군데 석탑, 석등, 석불을 비롯한 적절한 규모의 석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곳을 지나 돌다리를 건너 비탈길을 올라가면 뒷정원이 나온다. 후원에 도달하자 눈앞에 잘 구획된 식민지 시대 일본인들이 살던 동네가 한눈에 들어왔고 멀리 바다가 보였다. 등 뒤로는 이훈동 회장의 묘소가 있다. 천하의 명당이라는 느낌이 확 들어왔다.

정원을 나와 발걸음을 옮겨 목포역을 향해 걷는데 오거리가 나오고 곧 이어서 일본식 분위기의 건물이 보였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교토 소재 동본원사라는 절의 목포 분원이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 교회 건물로 쓰이다가 지금은 목포시 문화재단 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다. 옛 건물을 보존하고 그 옆에 아담한 규모로 재단 건물을 새로 지었는데 그 규모와 비례가 원래 있던 건물과 잘 어울렸다. 건물 앞 입구의 돌바닥과 계단도 오래된 돌을 살리고 있어서 역사의 흔적이 느껴졌다. 과거 목포의 가장 번화한 구역이었던 오거리 부근은 인구와 상권이 신도시로 이동하면서 다소 퇴락한 느낌을 주었지만 목포의 명물 가운데 하나인 코롬방제과만은 고객들로 붐볐다. 1974년 여름 친구들과 배낭을 메고 전국 일주를 할 때 그곳에 들러 크림빵을 먹던 기억이 났다. 그곳을 지나 삼학도로 향했다. 오랜 수난의 역사가 새겨진 삼학도에는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 기념공원과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이 있다. 목포의 눈물을 한반도 평화와 세계 평화를 위한 힘으로 전환시키라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정수복 사회학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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