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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규항


ㆍ“싸워 이긴다해도 ‘무한도전 보게 해주세요’ 밖에… 정말 의미 있는가”


언론노조위원장 이강택은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다. 지난 두 해 동안 그는 그의 동료들과 함께 최선을 다해 싸워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싸우긴 했지만 출발부터 근본적인 한계를 가진 싸움이었고 그 한계 자체를 극복하는 싸움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말이다. 그의 불편한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약이 될 수 있을까.


 

이강택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이 한국프레스센터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현재 언론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_ 김정근 기자 jeongk@kyunghyang.com (출처 : 경향DB)



▲ 방송사 노동방식은 이미 신자유주의 체계

정규·비정규직 차이 넘어선 게 ‘방송파업’

사측 끝없는 ‘버티기’에 한계도 드러나


▲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선거판만 바라보다

복귀 때 목표인 재파업 대중동력 잃어버려


▲ 자사 이기주의·선민의식 벗어던지고

철저한 성찰·소통 통해 새 길 찾아야 할 때


김규항 = 언론노조 쪽은 지난 대선 후 분위기가 어떤가요.


이강택 = ‘멘붕’이라고들 하는데 크게 다르지 않죠. 언론노조는 상대적으로 자유주의 정권이 집권하면 일하기가 좀 편한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잖아요. 그게 막혀버리니까 막막해들 해요.


김규항 = 보수정권과 자유주의 정권의 차이가 어디나 같진 않은데요. 언론노조나 대기업 정규직 쪽은 차이가 있다면 비정규 부문은 별 차이가 없다고도 합니다. 차이의 차이라고 할까요.


이강택 = 그 차이들을 넘어서는 경험이 적다는 게 문제죠. 예를 들면 지난번 MBC가 파업을 하면서 바로 불법파업으로 공격받고 손배가압류를 당하면서 ‘아 이런 거였구나’ 다른 노동자들이 당해온 걸 비로소 체감하잖아요. 그런 처지가 되어보니 비로소 현장에 카메라 한 대가 와서 찍어준다는 게, 보도 기사 한줄 내준다는 게 얼마나 큰 건지 체감하는 거죠. 그런 경험들, 차이를 넘어서는 경험들이 너무 적죠.


김규항 = 뒤집어 말하면 언론노동자들이 평소엔 노동자라는 자각이나 계급의식이 적다는 말인데요. 방송사 파업을 하면 그런 비아냥도 있죠. ‘평소에는 전문직으로서 선민의식에 차 있다가 저희가 다급해지면 노동자 코스프레를 한다.’ 불편한 이야기지만 한번쯤은 제대로 해볼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강택 = 상당 부분 인정할 만한 이야기죠. 방송사 같은 경우엔 이미 작업체계나 노동방식이 신자유주의 질서로 재편되어 있어요. 작가, FD, AD, 편집기사, 운전 등등 다 비정규직이고 모든 작업은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관리하는 방식이죠. 게다가 50%는 외주 하청 제작이에요. 그런 구조 속에서 익숙해진 채 일하다가 막상 파업을 해보니 내가 하던 일을 간부들이 와서 때우거나 대체 인력이 투입되는데 이게 큰 차이 없이 꾸려가요. 그때 비로소 내가 비정규직 문제에 얼마나 무감각해진 상태인가, 내가 같은 노동자가 아니라 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구나 깨닫는 거죠. 문제는 그런 깨달음을 확장시키고 발전시켜서 말씀하신 차이의 차이를 넘어서는 건데요. 작년 저희 싸움을 돌아보면 상반기에는 그런 분위기가 생겼다가 하반기엔 사그라졌죠.


김규항 = 상반기엔 분위기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군요.


이강택 = 이를테면 언론 문제로 전국노동자대회를 했었잖아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KBS와 MBC가 싸우는 데 모여서 리본도 걸고 둘러쌌죠. 조합원들에게 문자가 많이 왔어요. 감동한 문자들. 연대의 힘을 느낀 거죠. 이게 하반기로 조금은 이어져서 SJM, 만도기계 이런 데서 용역폭력이 나니까 우리 안에서 ‘이제 우리가 갚을 때다’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 즈음이 그래도 근래 보기 드물게 노동 상황에 대해선 보도가 좀 잘된 편이었어요. 이게 더 일상화하고 진전하진 못했죠. 


김규항 = 언론노동자들의 싸움에서 공정성이나 편집권 독립이 주요한 주제인데요. 그런데 그 주제의 실체가 모호한 데가 있어요. 노무현 쪽 사장이냐, 이명박 쪽 사장이냐에 머문다고 할까요.


이강택 = 언론의 공정성, 편집권 독립 이런 주제들이 근본적인 구조의 변화 없이는 참 공허한 이야기들일 수밖에 없다는 걸 싸우면서도 늘 생각하게 되죠. 파업을 하고 싸워서 사장을 바꿔낸다. 그러면 자유주의 정권 시절의 조금 나은 상황으로 간다는 건데, 이게 정규직 언론노동자들에겐 분명히 나은 상황이지만 사회 전체 국민들에게 정말 의미가 있는가. 


김규항 = 의미라는 건 결국 방송 내용이겠지요.


이강택 = 바로 그 방송 내용에서 딱히 또렷한 차이가 없죠. 그러니 이 싸움에서 이기면 뭐가 달라진다고 사회에 국민들에게 당당하게 말하기 어려운 거죠. ‘<무한도전> 보게 해주세요’ 이렇게밖에 안되는 건데 그건 보편적인 설득력을 갖기 어렵죠.


김규항 = PD로 현장에서 일하면서 체험한 자유주의 정권 시절은 어땠나요.


이강택 = 권위주의 시절에 비하면 일정하게 자유로워진 면이 있었죠. 프로그램 기획이나 발제를 했을 때 무조건 안된다든가 그렇진 않고, 대신에 다양한 이유를 대서 뒤로 미루거나 하는 식이죠. 아주 독하게 하겠다고 하면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상황이랄까. 


김규항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신자유주의 문제에 대해 좋은 프로그램을 여러 편 만들었고, 여전히 선생을 언론노조위원장이 아니라 그 프로그램 이름으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강택 = 정연주 사장 때인데, 제가 PD협회장 하다가 복귀해서 처음에 <시사투나잇>이라는 걸 했어요. 재미있게 했죠. 후배들과 세미나도 하고 주말엔 후배들 대신 제가 카메라 들고 평택 대추리 같은 현장에도 가고 했죠. 6개월을 제 책임하에 끌어갔는데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로 가서 ‘신자유주의를 넘어서 차베스의 도전’ ‘FTA 12년 멕시코의 명과 암’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미국 쇠고기 보고서’ 같은 걸 만들었죠. 할 때마다 내부에서 이야기가 나왔어요. 이런 논리죠. 공영방송이니까 여러 입장들을 안배해서 합의를 도출해야 하는 것 아니냐. 멕시코의 경우 타이틀이 ‘FTA 12년 멕시코의 명과 암’인데 명과 암이 균형있게 안 나오고 암만 많다. 


KBS '시사투나잇' (출처 :경향DB)


김규항 = 명과 암이 1 대 99인데 50 대 50으로 하는 건 진실을 왜곡하는 거죠.(웃음)


이강택 = 대체 진실이라는 게 뭐냐, 공정이라는 게 뭐냐 이런 논쟁이 벌어지는 거죠. 다수가 문제 있다고 하는데 조용히 좀 있어라. 그걸 억지로 밀고 나가서 만들고 나면 강평하는 자리나 사내 심의에서 너무 편향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계속 그런 과정의 연속이었어요. 결국 ‘얼굴 없는 광우병’을 만들고는 부서를 이동 당했죠. 출근해보니 프로그램 배정이나 편성도 없는 자리더군요. 제가 프로그램을 다시 만들 수 있게 된 건 그로부터 반년 후, 한·미 FTA가 체결되고 나서였죠. 자유주의 정권이라는 게 상대적으로 유연해 보이지만 기존 체제는 유지되는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김규항 = 상대적인 유연성, 혹은 자유주의적 공간이 열린다는 건 가능성으로서 의미를 갖는 건 분명한데, 그게 실체를 가지려면 우리에게 힘과 내용이 있어야죠. 


이강택 = 그 공간을 활용할 만큼의 준비, 문제의식, 좀 더 급진적인 사고들을 가진 사람이 없으면 그런 공간이 열려도 소용이 없죠. 그 당시 KBS이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었는가. 대다수 노동자와 민중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어요. 회사의 운영 구조나 프로그램 기조도 아까 말한 대로 이미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된 상태였고요. 


김규항 = ‘퍼블릭 엑세스’라고 하나요, 시민이나 노동자, 독립영화인들이 제작에 개입하는 활동이 필요한데요. 


이강택 = 그 부분을 위해 나름대로 이런저런 노력을 했는데 제대로 되진 않았죠. 바깥에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제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또는 밖에서 준비된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제작에 참여할 수 있게 할 것인가는 늘 제 고민의 주제입니다. 그게 없으면 자유주의 정권으로 바뀌고 사장이 바뀌어도 별 다를 게 없죠 사실. 


김규항 = 자유주의적 공간이 열려도 그걸 채울 만한 사람이나 내용이 없다는 건 참 심각한 일인데요. 그런 상황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뭔가요. 


이강택 = 여러 원인이 있겠죠. 언론 노동자로서 의식이나 열정과 무관하게 ‘언론고시’를 통해 기자나 피디가 만들어지는 것도 있겠구요. KBS의 경우에 나이 든 간부들은 옛날 학도호국단 간부 출신들이고 젊은 사람들은 학교공부 잘한 사람들이죠. 


김규항 = 물론 시민들은 전자보다 후자를 낫게 보지만,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올 수 없는 구조라는 건 같군요. 


이강택 = 또 하나는 역시 극단화한 신자유주의적 경쟁이죠. 뚜렷한 차별화라는 게 존재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채널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죠. 특히 피디들은 거의 실시간, 분 단위로 시청률이 파악되고 평가가 이루어지는데요. 이게 집단적으로 표현되면 자사 이기주의로 나타나요. 그러다보니 언론노조 차원에서 정책이나 의견을 발표할 때도 방송사 간에 갈등이 나타날 수 있구요. 심지어 파업에 참가하지 않는 경쟁 매체에 좋은 일 시킨다는 생각도 존재할 수 있죠. 


김규항 = 그런 구조에서 정규직 언론노동자들이 일상에서 피디님, 기자님이라 불리면서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선민의식 같은 게 결합되면 노동자로서의 보편적 의식이나 사회에 대한 다른 관점을 갖는다는 건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군요. 


이강택 = 그런 면에서 회한이 많죠.(웃음) 최대한은 해봤어야 하는데, 선민의식이라고 하신 그런 기존의 사고틀이나 정서나 관행과 불편하더라도 좀더 치열하게 대처했어야 하는데, 일단 이 정도도 성과다라는 자족감에 안주한 게 아닌가, 하반기에도 그런 경험을 확장하는 교육사업을 적극적으로 시도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 하는.


김규항 = 기존의 사고 틀이나 정서나 관행이라는 건 안팎으로 있는 법인데요. 노동운동의 다른 부문과의 소통은 어떤가요.


이강택 = 민주노총 산별 위원장들이 국회 환경노동위원장과 만나서 자기 부문 이야기들을 하는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서로 놀라울 만큼 모르고 있더군요. 자리를 파하면서 다들 ‘다른 부문에 대해 알게 되었다’ ‘유익했다’고들 했지만 씁쓸했죠. 우리가 앞만 보고 옆은 보지 않고 왔구나. 


김규항 = 운동이라는 게 항상 코앞에 급한 현안이 떨어지잖아요. 그런데 거기 매몰되면 연대가 안 되고 전체를 못보고 결국 현안도 해결하기 어렵게 되어버리죠.


KBS 본관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공영방송 사수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이강택 = 민주노총이 총연맹이거든요. 총연맹이라는 구조가 바로 그런 걸 하기 위해 만든 것인데 실상은 뿔뿔이 나뉘어 있는 거죠. 자본은 그 틈을 타고 정규직은 손배 가압류나 타임오프 등을 통해 발을 묶고 정리해고의 토대를 닦고 비정규를 늘려가는 거죠. 결국 돌이켜보면 지난 10여년 동안 자본이 그런 식으로 승리해왔죠.


김규항 = 그건 사실 전체 사회에서 나타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진보적인 시민들이 이명박을 악마화하고 노무현을 신화화하면서 몇 년을 보내는 동안 자본은 진보정치와 민주노총으로 대변되는 조직 노동운동을 무너트렸죠. 대선은 박근혜가 이겼는가 문재인이 이겼는가와 무관하게 자본의 승리로 귀결한 셈이죠. 


이강택 = 저희 경우에도 상반기 투쟁하고 복귀하면서 목표는 그렇게 정했었어요. ‘대중동력을 유지하면서 언제든지 재파업을 할 수 있는 기조를 유지하고’ 등등. 그런데 실제로는 선거판만 바라보면서 잘하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이기면 쉽게 풀리지 않을까 하면서 몸을 움직이지 않게 되었죠. 


김규항 = 결국 문제의 실체와 대면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관리하는 노동 구조와 외주 하청계열화라는 실체를 제쳐둔 언론노동자의 싸움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강택 = 정체성이나 진정성을 넘어 결코 이길 수 없죠. 대중들에게도 도덕적인 호소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구요. 단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800만이고 노동자의 절반을 넘는데 언론사 파업이 그들에게 얼마나 호소력을 가졌겠느냐. 면구스럽지만 저희가 작년에 주어진 한계 내에서는 최선을 다했거든요. 


김규항 = 그 점에 대해선 충분히 동감합니다.(웃음) 선생도 단식투쟁하다가 반강제로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고 참 열심히들 싸웠죠.


이강택 = 그랬는데도 저놈들이 버티기로 나오면 이길 수 없다는 게 판정이 난 거죠. 애초부터 주어진 한계가 있다는 게 문제인 거죠. 그걸 돌파하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 싸움은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부수고 나가는 싸움이죠. 그게 없으면 한발자국도 더 못나간다고 봐요. 선택은 둘이에요. 주어진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가 자유주의 정권 교체라도 되면 조금 나아진 상황을 맞느냐,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부수고 나가면서 근본에서부터 새롭게 출발하느냐. 


김규항 = 이명박 이후 가장 큰 손실은 우리가 성찰 능력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해요. 이명박을 욕하고 혐오하다보니 어느새 이명박의 함정에 빠져버렸다고 할까요. 정의와 진보의 자리를 ‘이명박 조롱 경연’으로 채우면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교감 능력을 잃었고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전망을 만들어내는 능력도 퇴행했어요. 그걸 경계하고 환기해야 할 지식인들은 오히려 그걸 부추겼구요. 


이강택 = 철저한 성찰, 그걸 기반으로 한 소통이 필요해요. 그래야 새로운 걸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김규항 = 새로운 것이라고 하면 또 기발한 것, 발랄한 것 하면서 자유주의 흉내로 가기 십상인데요.


이강택 = 지난 10년 동안 그래왔죠.(웃음) 새로운 것이 뭐냐는 고민이 필요해요. 새로운 것은 기발한 게 아니라 우리가 간과해온 것 아닐까요. 우리는 우리 편한 대로 세상을 구성해서 바라보는 습관이 있고 간과해온 현실이 참 많죠.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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