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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사건 신고는 급증하고 있지만 경찰이 가정폭력 사범을 검거해 적극적으로 수사하는 사례는 10건 중 1건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3~2017년 5년간 가정폭력 신고는 약 116만건이었다. 이 중 지난해 접수된 신고는 28만건으로 2013년(16만건)에 비해 74%가량 증가했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신고 건수 대비 가정폭력 사범 검거율은 13%에 불과했다. 또한 2015년부터 올해 6월까지 검거된 가정폭력 사범 16만4000여명 중 구속된 이들은 1632명으로 1%에도 못 미친다. 경찰이 이처럼 가정폭력을 미온적으로 수사하면서 피해자는 가해자의 보복에 노출되고 재범의 악순환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가정폭력 재범률은 2015년 4.1%에서 올해 8.9%까지 높아졌다.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여성단체들이 주최한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 강력규탄 시민사회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가자들은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이혼한 아내가 전남편에 의해 살해당한 강서구 살인사건이 국가의 방관 때문에 발생했다면서 강력한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권도현 기자

최근 서울에서 발생한 전부인 살해사건도 결혼생활 20년간 지속된 가정폭력을 경찰이 제대로 대처하지 않다가 발생한 비극이라는 지적이 많다. 29일에는 한국여성의전화 등 690개 여성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검찰·법원 등 국가가 가정폭력을 방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증언에 나선 한 피해자는 16년 동안 가정폭력을 당한 뒤 이혼한 전남편이 죽이겠다며 찾아와 문을 부수어도 경찰은 “아줌마가 잘하세요”라는 말만 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다는 또 다른 피해자는 흉기를 들이대고 죽이겠다는 아버지를 신고했더니 경찰에게서 “그래도 아빠인데 어떻게 신고를 하니”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피해자가 죽어야만 가정폭력이 끝난다”는 이들의 외침은 가정폭력에 대처하는 사회와 국가의 무능을 되돌아보게 한다.

지난 3월에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이 피해자의 인권보호보다 가정의 유지와 복원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법 개정을 권고했다. 한국의 가정폭력대응시스템이 법에서부터 잘못됐다는 것이다. 여성계에서는 가해자가 법원의 접근금지명령을 어겨도 과태료만 내면 되고, 검찰은 가해자가 가정폭력상담소에서 상담받는 조건으로 기소하지 않는 등의 법적·제도적 허점을 지적하고 있다. 가정폭력은 더 이상 ‘집안 일’로만 치부될 수 없다. 정부는 가정폭력을 심각한 범죄로 인식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엄벌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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