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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사단의 일반전초(GOP) 총기난사 사고 속에서 세월호의 그림자를 본 한 군사평론가의 눈이 매섭다. 평론가 김종대는 한겨레신문 칼럼을 통해 GOP 사고를 분석하면서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고 장병의 외출, 외박, 휴가, 음주가 제한되었다…. 형성된 불만의 용암은 가장 얇은 지각을 찾아 분출하게 되어 있는데, 그것이 바로 22사단이다”라고 썼다. 그는 “일상을 유지하면서 자발적으로 추모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것저것 하지 말라고 윽박지르고 조여붙이는 건 군 수뇌부 위신을 세우기 위한 권위적 조처들이지 추모와는 거리가 멀다”고 덧붙였다. GOP 사고는 결국, 예고된 참사였다는 진단이자 군의 영혼 없는 세월호 추모에 대한 비판이다.

군만 그랬던 건 아닌 모양이다. 감사기관이 공무원들의 외유를 추려내기 위해 출입국 기록을 들추는가 하면 한 정부기관에선 연휴 때 직원들을 교대근무시키며 청사에 잡아놓는 일까지 있었다.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식의 즉자적 대응이다. ‘권위적 조처’는 세월호 피로도를 높일 뿐 진정한 추모 분위기 조성과는 거리가 멀다. 하긴 엊그제도 서울경찰청장은 “유병언씨를 잡을 때까지 간부들은 휴가금지”라고 공언했다. 이런 관리, 감시 체제는 부지불식간에 시작됐다 슬그머니 사라지기 마련인데 해제 사유를 두고 관가에 코미디 같은 관측들이 나왔다고 한다. ‘월드컵이 개막해서’라거나 ‘지방선거가 끝나서’, ‘공영방송인 KBS가 <개그콘서트>를 재개해서’ 등등. 사건은 사건으로 덮는다고 했던가. 2, 3주 전이라는 시점에 비춰보면 전혀 근거가 없는 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세월호를 답습하는 GOP 사고 대처 방식이다. 응급 헬기 출동이 1시간 가까이 지연되는 등 초기대응 미숙으로 희생자가 늘었다. 세월호 침몰의 순간, 그 모습이다. 늑장 대처는 생과 사를 가를 수도 있다. 국방부 장관이 사건 발생 며칠 뒤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한 달여 뒤 대국민 사과를 한 것도 닮았다. 장관이 본격 조사도 시작하기 전에 집단따돌림이 사고의 한 원인이라고 예단한 것 역시 세월호를 유병언 개인의 문제인 듯 몰아붙이는 검찰 수사를 연상시킨다. 모든 책임을 관심병사 개인 또는 일부 부대원 탓으로 전가하면서 병영의 구조적 문제와 부조리를 은폐시키려는 처사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GOP 사고를 세월호에 견주는 이유다. 이미 ‘괴물’이 돼버린 임모 병장도 이번 사고의 피해자라는 문제의식이 없는 한 GOP 사고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다.


육군이 언론을 따돌리기 위해 일반 병사를 임모 병장 대역으로 세워 모포를 덮은 뒤 강릉아산병원 안으로 이송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정홍원 국무총리의 유임은 ‘영혼 없는’ 정부 대응의 정수라 하겠다. 세월호 참사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겠다며 총리 퇴진 카드를 꺼낸 청와대가 GOP 사고 수습 와중에 정 총리 유임을 발표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가겠다는 시그널로 봐도 무방하다. 적폐 운운하며 국가개조라는 슬로건을 내건 개각 당시만 해도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돌아온 것은 ‘인사 참사’였고, 총리 유임은 최악의 인사 참사로 기록됐다. ‘눈물의 대국민 담화’를 통해 약속한 각종 쇄신책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마저 앗아가 버렸다. 향후 GOP 사고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어떠할지 짐작하게 한다.

왜,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가. 무엇보다 정권의 공감능력 부재를 꼽을 수밖에 없다. 왜 참사가 일어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고, 하필 지금 일어났지라는 식의 네 탓과 푸념만 있을 뿐이다. 모든 사건을 타자화해 책임을 모면하려는 습속이다. 여론의 전달 루트가 봉쇄됐거나 외면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권의 대응을 비판하며 “예전 상어형 리더십의 중요한 자질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것이었다. 타인의 고통에 민감한 리더는 생산력을 독려하기 힘들다”고 일갈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의 과거 회귀형 리더십에서 약자에 대한 연민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으로 들린다.

세월호 참사는 발생 두 달 보름이 넘도록 ‘유병언 추적’ 외에 본질에 접근하고 있다는 그 어떤 조짐도 발견할 수가 없다. 이유는 두 가지 중 하나일 터이다. 수사 의지 또는 실력이 없거나, 본질이 드러나선 안될 어떠한 까닭이 있거나. ‘선거의 여왕’이라는 박 대통령이 6·4 지방선거를 치르고, 7·30 재·보선으로 가는 과정에서 보여준 대응이 이 정도다. 이래서는 무수한 참사와 집단적 기억상실증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또 다른 세월호가 곳곳에서 복원력을 잃은 채 침몰하고 말 것이다. 7월 재·보선이 끝나면 다음 총선까진 1년9개월이다. 7·30 이후가 더 두렵다.


김봉선 출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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