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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 윤 2월9일 아침, 정조대왕은 역사적인 수원화성 행차에 나섰다.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베풀고, 동갑이었던 아버지 사도세자가 묻힌 현륭원에 성묘를 가기 위한 것이었다. 보통이면 이동하는 데 하루 정도가 걸리는 거리였지만, 노모의 건강을 염려한 왕은 여행을 이틀에 걸친 일정으로 잡았다. 악대의 연주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무려 6000명의 신하로 구성된 이 성대한 행렬은 완행으로 화성행궁을 향했다. 옷깃이 스치고 흙을 지르밟는 집합적 소리가 지그시 봄 하늘을 메우고 있었다. 햇살은 부드러웠다.

물론 이 마지막 두 문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현장에 있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분위기까지 알겠는가. 하지만 당시의 모습을 묘사한 정조대왕 능행도(正祖大王 陵行圖)를 보면 어렴풋이나마 그날의 정취를 상상하고 당시의 풍경을 재구성할 수 있다. 구경을 막지 말라는 정조의 지시 덕에 백성들이 행렬 양옆에 모여들었는데, 배경을 보면 드문드문 난 초가집들이 논밭이나 풍성한 수풀과 어우러져 있음이 잘 드러난다. 당연히 토지가 건물과 도로에 의해 압도된 요즘의 모습과는 너무도 멀다. 그래서 이러한 경관생태학적 근거를 들어, 비록 화가가 일일이 기록하지 않았더라도, 이 행렬의 구경꾼 무리 속에는 새와 곤충, 크고 작은 들짐승이 포함되어 있으리라 거의 확신하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를 예측해본다. 행차의 목격자 중 수원청개구리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수원청개구리? 수원에 사는 청개구리? 언제부터 동네마다 구별해서 부르기로 했나? 아니다. 청개구리와는 엄연히 구별되는 별도의 종이다. 구라모토 미스루라 하는 일본 과학자에 의해 1980년대에 수원에서 처음 발견되어 붙여진 이름. 유일하게 한국의 지명이 학명(Hyla suweonensis)에 반영된 개구리. 중국, 일본, 러시아까지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청개구리(Hyla japonica)와는 달리 전 세계를 통틀어 한국의 중서부 일대에서만 존재하는 희귀 양서류. 지금은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야생동식물 1급이 되어버린 신세. 수원청개구리.

녀석들이 행렬을 봤을 것이라는 상상이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다. 양력으로 3월 하순경에 해당되는 행차일은 실제로 이들이 한창 활동할 시기이다. 행차 이틀째인 10일 오후에는 비가 내렸다는데, 정조는 신하들을 비 맞히는 것을 미안해했지만 행차를 강행하였다. 흠뻑 젖은 논두렁과 밭두렁으로 기어 나온 구경꾼 중에 수원청개구리가 있었을 가능성은 제법 있다. 사실 이 개구리는 수원, 화성은 물론 파주, 시흥, 안성, 평택 등 경기도 일대에 두루 분포하기에 오가는 길에 한번쯤 지나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들이 알았건 몰랐건 말이다.

그런데 모른다는 것, 이것이 바로 문제이다. 수원청개구리는 청개구리와 외관상으로는 거의 똑같다. 전문가만이 볼 수 있는 미세한 형태학적 차이는 있지만 이 역시 완벽히 신뢰할 수 없어 정확한 종 동정은 DNA 분석에 의지한다. 단, 딱 한 가지 분명한 차이점이 있는데 바로 소리이다. 수원청개구리가 내는 짝짓기용 울음소리는 일반 청개구리와 전혀 달라 누구나 훈련을 받으면 구별해낼 수 있다. 목소리는 다르지만 생김새가 같다는 이유로 존재조차 몰랐던 생물이다. 그래서 없어지고 있다는 조용하고 슬픈 사실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나타남과 동시에 사라질 위기에 처하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로다. 하지만 이는 다분히 인간의 시점에서 하는 말이다. 수원청개구리는 우리보다 훨씬 오래된 한반도의 주민이다. 청개구리와 진화적으로 분화한 시점인 약 700만년 전은 인간이 침팬지와 갈라지기 시작한 때이다. 한민족이 그들의 존재를 깨달은 지는 겨우 30여년이지만, 그들은 우리의 아둔한 인식과 무관하게 이 땅에 떡하니 있어왔다. 연못 등 자연 서식지의 파괴, 논 면적의 꾸준한 감소, 독성 농약의 사용, 도로에 의한 서식지 파편화 등 온갖 악재를 거치며 오늘날까지 힘겹게 명맥을 유지해온 생물이다.

하지만 이제는 힘에 부친다. 수원청개구리는 하필이면 유난히 개발에 취약한 종이다. 습지의 면적이 넓어야, 주변의 식생이 무성해야, 인간으로부터 멀어야 산다. 논둑 주변의 잡초를 바짝 베면 살기 힘들어질 정도로 ‘생태적 디테일’에 민감하다. 개구리 과학자 아마엘 볼체와 생명다양성재단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현재 국내 개체군의 크기는 총 742마리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대부분 여기저기 흩어져 고립된 개체들이다. 곧 닥칠지 모를 임진강 준설 사업은 수원청개구리 최대 서식지 중 하나인 파주 마정리와 사목리의 논에 흙을 부어 메우겠다고 한다. 한국만의 고유한 양서류이자, 경기도 역사의 산증인인 수원청개구리. 이들을 보호할 지혜로운 어명이 내려지길 야생학교는 아뢰는 바이다.


김산하 | 영장류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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