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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의 문을 들어서는 순간 들려오는 힘찬 외침. “어서 오세요!”

그런데 사실은 그다지 힘차지도 않으며, 제대로 나를 향한 말도 아니다. 보통 손님을 보지도 않은 채 건네는 인사라, 받는 이도 화답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 가게 내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도 빈약하기는 매한가지. 꼭 필요한 질문과 대답, 포장 및 결제에 관한 사항 외에는 할 말도 없다. 오히려 상업적 관계를 살짝이라도 벗어나는 대화를 시도했다간 수습이 불가한 어색함이 찾아올 수가 있다. 특히 남자 손님이 괜히 여자 직원에게 시도하는 몇 마디는 치근거림으로 오인되기 일쑤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수반되는 미묘함과 복잡성이 버겁게 느껴질 때, 차라리 인터넷과 같은 가상공간이 제공하는 익명적 깔끔함이 편안하고 쾌적하다.

생활 속에서 온라인 세계가 비중이 급속도로 높아진 데에는 이런 사회적인 측면 말고도 여러 원인이 있지만, 오프라인 세계가 가져다주는 온갖 거추장스러움을 제거하고 싶은 현대인들의 마음도 분명히 큰 몫을 차지한다. 인터넷에서는 물건을 살 때에는 점원의 눈치를 볼 필요도, 부담에 눌려 서둘러 결정할 필요도 없다. 외출한답시고 차려 입을 것도 없이 그냥 추리닝 바람으로 몇 시간이고 눌러앉아 조목조목 끝없이 살펴도 된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을 찾으러 사방팔방 뛰어다닐 것 없이, 검색 한 번이면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이들과 바로 접속해서 원하는 얘기를 나눌 수 있다. 진짜 만남에 수반되는 어색한 자기소개와 서투른 교제의 통과의례를 거치 않고도 ‘사회생활’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인터넷 쇼핑몰과 인터넷 카페가 완전 대세인 오늘날에선 이런 얘기조차 새삼스러울 뿐이다. 현실세계를 지칭할 때 ‘온라인이 아닌 상태’(오프라인)로 부르는 것만 봐도 인터넷 세상이 얼마나 중요해져 버렸는지 알 만하다.

하지만 인터넷 인간사의 신속함과 간편함 덕분에 생겨나는 새로운 문제들이 있다. 자살 카페나 성매매 채팅방, 도박 사이트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잘 알려진 우리 사회의 이러한 그늘진 구석들은 여전히 큰 문제이지만 적어도 법의 테두리 안에 놓여 있어 규제를 받는다. 법률적 저촉을 떠나 이런 일들은 사회적인 지탄을 받기에 대놓고 벌일 수 있는 그런 활동들은 아니다.

그런데 생명경시와 자연파괴, 질병확산과 생물학대 등 온갖 심각한 문제를 유발함에도 불구하고 법적인 제재는 물론 사회적 관심조차 얻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하나 있다. 바로 인터넷을 통한 야생동물 거래이다.



최근 ‘동물을 위한 행동’과 ‘슬픈과학자’라는 단체가 공동으로 조사한 <야생동물 개인 거래 및 사육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두 개의 주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거래된 야생동물은 2012년 11월부터 2013년 10월 사이에 무려 1만7573마리에 이른다. 하루에 약 48마리꼴로 매매가 이뤄진 셈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개와 고양이 같은 일반 반려동물이 포함되지 않은 수치라는 점이다. 햄스터, 고슴도치, 토끼 등 비교적 ‘친근한’ 동물은 물론 프레리독, 페렛, 날다람쥐 등의 포유류 다수와 양서파충류, 어류, 곤충, 거미, 심지어는 연체동물까지 망라한 인터넷 쇼핑몰이 버젓이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멸종위기 종인 긴팔원숭이나 슬로로리스까지 매물이다. 많은 경우 거래가 성사되면 동물을 상자에 넣어 구멍 몇 개 뚫고 택배로 배송해버린다. 배송 도중 죽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단서가 거래 약정의 일부이다.

머나먼 땅에서 들여온 야생동물은 애완동물이 아니기에 제대로 된 사육방법도 없다. 대부분의 동물은 나이나 성별과 같은 기초정보도 제공되지 않은 채 보내진다. 엄연히 상자 속에서 숨 쉬고 있는 생명이지만, 짐보다 더 짐짝 취급을 받는다. 아무나 거래에 참여할 수 있어서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물을 구매한 아이들이 동물을 급히 처리하는 공간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키우다 지겨워진 동물은 다른 동물로 바꾸는 물물교환도 빈번하다. 반드시 동물끼리 바꾸지 않아도 된다. 돈을 얹어서라도 키우던 고슴도치를 전자기기와 교환하길 희망한다는 글마저 올라온다.

법의 사각지대에 안전하게 자리 잡은 야생동물의 온라인 홈쇼핑은 클릭만으로 밀림의 생명체를 오토바이로 배달받는다. 국제적멸종위기종의 불법보유의 경우는 처벌이 가능하지만 몰래 방사해버리거나 몰랐다고 하면 그만이다. 낯선 환경에서 갑자기 홀로 살 길을 찾아야 하는 동물은 반드시 외롭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사실 불법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생명에 대한 폭력적 속박, 착취와 유린은 설사 법이 현실을 따라가 주지 못한다 해도 절대로 용인될 수 없다. 이에 마땅히 우리는 분노하고, 야생학교는 고발한다.


김산하 | 영장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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