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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즐겁지만 또한 피곤하다. 나의 편안한 보금자리로부터 벗어나 어떤 낯섦과 마주하는 일은 의외로 힘이 드는 경험이다. 구경하려고 많이 걷다 보면 물론 더욱 그렇지만, 몸이 최대한 편안하도록 앉아서 돌아다녀도 하루가 끝날 때쯤이면 녹초가 돼버린다. 매 끼니를 잘 먹고 평소보다 늘어지게 늦잠을 자도 마찬가지이다. 최고의 럭셔리 호텔에서 아무리 휴식에 탐닉한다 해도, 나만의 소박한 공간에서 쉬는 것만큼 에너지가 재충전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우리의 근접 환경과 엄청나게 다양한 관계와 상호작용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들이마시는 물과 공기의 미세한 화학적 조성과 향기, 내가 걷는 길의 교통신호 체계와 공간구성, 내가 쓰는 언어의 문법과 어휘와 뉘앙스.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이 익숙한 세계의 시스템에 접속하여 정신적·물질적으로 원활한 대사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새로운 환경에 놓이면 잘 돌아가던 이 모든 것들이 부자연스러워진다. 그래서 추가적으로 에너지가 필요하게 된다. 여행지에서 새로운 통신망을 검색하는 모바일 기기처럼 우리의 감각과 정신은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적응 및 훈련 모드에 돌입한다. 비행기가 멀리 옮겨다 준 몸이야 멀쩡하지만 실은 눈에 안 보이는 무수한 탯줄을 끊고 달아난 신세에 다름 아니다.

연세대 측에서 백양로 공사현장을 숲 사진으로 막아둔 모습 (출처 :경향DB)


새 한 마리, 꽃 한 송이 등 각각의 생물체를 개별적인 존재로 국한시키지 않고, 그것이 속한 세계와의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바라보는 것이 바로 생태학적 관점이다. 죽은 동식물의 표본을 모아 종류에 따라 늘어놓는 고전적 자연사 박물관이나, 살아 있는 동물을 잡아 고립된 울타리에 가두어 관찰하는 동물원은 과거에 자연을 대하던 자세이다. 동식물이 자생하는 물리적인 터전인 유형적 서식지는 물론, 복잡다단한 생태적 관계를 아우르는 무형적 서식지까지 고려하는 것이 오늘날의 자연관이다. 신체적 고통을 주지 않아도 자유를 제한하거나 사회적으로 차단시키는 감금형 또는 귀양살이를 하나의 처벌로 여겨온 인류사를 생각하면, 이런 맥락이 자연에까지 범위가 확대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생명에 대한 이러한 현대적 시각이 아직 사회 곳곳에 충분히 깃든 것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개발과 보존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이 생기면, 문제가 되는 그 자연을 ‘옮기는’ 해괴한 해법이 태연하게 제시되고 있다. “개발지로 선정된 곳에 서식하는 나무 ○○그루를 옮겨심기로 결정했다.” 환경부나 산림청과 같은 관련당국으로부터 심심찮게 들리는 말이다. 마치 물건이라도 치우듯 ‘옮기기’는 간편하고 훌륭한 대안인 양 많은 국가과제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 이런 조치에 대한 가장 자연스러운 반응은 “옮겨도 되는 건가?”이다. 기술적 어려움이나 법률적 가능 여부가 궁금한 것이 아니다. 가장 먼저 차오르는 질문의 진짜 내용은 이것이다. “자연을 그런 식으로 다뤄도 되는 건가?”

실제로 생태학계에서 사람에 의한 동식물의 이주는 뜨거운 논란거리이다. 한 생물의 ‘이입(relocation)’은 그 생물을 보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정당화되기도 하지만, 이입지의 생태계를 교란시킬 수 있기 때문에 반대의 목소리도 높다. 이입은 외래종 도입의 위험을 초래하고, 진화적 역사와 생태적 순환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논란조차 그대로 뒀다간 멸종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거의 확실시되는 생물에 한해서 이뤄지고 있다. 멀쩡히 서 있는 산림지역을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 위해 대충 옆으로 치워버리는 일은 이입에 해당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옮겨심기’는 버젓한 생태학적 정책처럼 협상 테이블에 수시로 올라오고 있다. 생태학이 아니라 원예학의 눈으로 숲을 보는 수준이다. 옮겨 심는 과정에서 나무에 미치는 해악, 나무를 둘러싼 고유한 생태계 등에 대한 고려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나무 몇 그루 살렸으니 된 것 아니냐는 식이다. 하지만 그조차 정말 살렸는지는 미지수이다. 인도 날곤다 지역에서는 2010년에 고속도로 확장공사의 일환으로 수령이 몇백 년에 이르는 나무 27그루를 옮겨 심었지만 모두 죽고 말았다. 예외적으로 허락된 옮겨심기가 성공하려면 이입지의 생태적 유사성, 이입기술의 적절성, 사후관리의 체계성 등의 까다로운 조건이 엄격히 적용되어야만 한다. 그나마도 영국의 통합자연보전위원회가 밝히는 것처럼 “이동은 원위치 보전(in situ conservation)이 가능한 한 절대로 수용 가능한 대안이 아님”을 전제로 이 모든 얘기가 이뤄져야 한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옛말에 담긴 생태학적 의미가 깊다고, 야생학교는 되새긴다.
   

김산하 | 영장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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