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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년 전의 일이다. 아침 출근길에 나선 나의 아버지는 올림픽대교를 달리고 있었다. 동작대교로 넘어가는 곡선구간에 이르자 길 한가운데에 아주 작은 보행자들이 눈에 띄었다. 엄마 오리와 뒤따르는 4~5마리의 새끼들. 아마도 한강에 있다가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인지 종종걸음으로 이 위험천만한 도로를 건너고 있었다. 다행히도 아버지는 속도를 급히 줄이고 차를 최대한 비켜서 몰았기에 최악의 사고는 면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 아슬아슬한 모면도 겨우 시작일 뿐, 그 방향 그대로 계속 갔다간 그야말로 산 너머 산이었다. 과연 오리 가족이 저 무시무시한 왕복 8차선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 운 좋게 살아서 그 고비를 넘겼던들 무슨 의미가 있으랴. 넘어도, 넘어도 끝이 없는 거미줄 같은 도로망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 턱이 없다.

앞을 향해 돌진하는 데 바쁜 우리네 삶의 직진운동은 사실 무단횡단 조류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무조건 앞으로 갈 뿐이다. 오직 기계적인 전진만이 허락된 이 이상한 공간인 도로에 뭣 모르고 들어온 동물은 ‘이물질’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제거된다. 이들은 문명의 진로에 방해가 되는 일종의 ‘자연 불순물’에 불과하다. 대지를 촘촘히 수놓은 거미줄 같은 도로망은 어떻게든 최단 직선거리로 이동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물론 이 화려한 교통 인프라는 오직 인간만을 위한 왕도이다. 자연은, 멀리 돌아가야 한다. 아예 돌아다닐 생각을 말거나, 가뭄에 콩 나듯 놓인 좁다란 생태통로를 이용하라는 뜻이다. 우회할 생각이 없으면 죽음을 각오한 횡단을 감행해야 한다. 실제로 연간 약 1만마리 이상의 동물이 이 어리석은 도박을 시도하다가 로드킬(roadkill)을 당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꿩, 너구리, 구렁이, 두꺼비, 삵, 고라니 등 온갖 종이 해마다 ‘사망자’ 명단에 오른다. 도로에 가지 않는 동물은, 도로가 직접 찾아간다. 인간의 직진본능은 도롱뇽이야 뭐라 하건 천성산을 관통해야 직성이 풀린다. 돌아가라니? 천만의 말씀! 내 갈 길에 놓였다면 고목(古木)이라도 우리는 둘러갈 마음이 없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활강경기 예정지인 강원도 정선군 가리왕산의 나무 5만여그루는 스키 선수들이 내려갈 길을 터주기 위해 벌목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중에는 수령이 무려 600년에 이르는 주목도 포함되어 있지만, 올림픽은 인류 화합의 잔치이기에 자연은 초대 손님에서 제외되는 모양이다. 위대한 인간사를 전진시키는 과정에서 동식물 따위는 거치적거리는 부산물일 뿐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어떤 경우라도 전진을 멈추지 않는 이 사회가, 길을 가로막아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일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블록버스터 영화 <어벤져스2>의 서울 촬영으로 시내 곳곳에서 벌어지는 교통통제 소식은 마치 민족의 명절처럼 환대받는 분위기이다. 마포대교, 강남대로, 청담대교 등 주요 교통요지가 거대 할리우드 자본의 사적인 용도로 점유되는데도 기꺼이 둘러가겠다는 이들이 즐비하다. 한때 한강의 대표적인 애물단지 사업으로 손꼽히던 세빛둥둥섬은 가상의 IT 연구소 역할이 주어졌다는 이유만으로 하루아침에 명소가 되어버렸다. 영화 속 서울시의 카메오 출연은 기껏해야 로봇 악당에 의해 쑥대밭이 되는 역할에 그치지만 ‘홍보’의 기쁨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은 경제적 산수에 무능한 사람처럼 취급받는다. 시민의 권리 운운하는 이에게 돌아오는 답변은 대략 이런 식이다. “너의 그 하찮은 불편 조금만 감수하면 4000억원의 홍보효과가 발생하는 걸 모르냐?” 허황되기 짝이 없는 이 금전적 계산법을 신봉하는 영화진흥위원회는 아예 30억원이라는 현금 ‘할인혜택’까지 제작진에게 갖다 바쳤다. 제대로 검증될 수도 없는 경제효과의 논리가 맞나 틀리나, 또는 그 정확한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핵심은 공공영역의 일을 결정함에 있어서, 이 땅을 터전으로 삼고 있는 존재와 그들의 삶이 부차적인 대상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전혀 공익적인 성격이 아닌 일에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순순히 양보해야 하는 시민은 무소불위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활보하는 대로(大路)에 곁다리로 전락한다. 심지어 구경꾼의 역할마저 쉽게 허락되지 않는 초라한 신세이다. 여기에 적은 제작비로 예술성을 추구하는 독립영화 종사자들이 느낄 분노와 절망은 감히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인간이 전진하는 데 귀찮은 존재가 되어버린 자연, 그 로드킬의 상징성이 와 닿는 요즘이라고, 야생학교는 탄식한다.


김산하 | 영장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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