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래저래 추운 겨울입니다. 새를 중심에 두면 겨울은 철새의 계절입니다. 새는 이동 특성에 따라 텃새와 철새로 구분합니다. 텃새는 우리나라를 떠나지 않고 머물며 살아가는 새, 철새는 번식지와 월동지를 계절 따라 오가는 새를 말합니다. 우리나라에는 텃새가 가장 많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나라의 새 약 530종 가운데 텃새는 56종으로 10% 수준이며, 겨울철새가 가장 많습니다. 겨울철새의 예로는 오리, 기러기, 고니, 두루미, 수릿과의 맹금류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철새는 찾아오는 시기와 머무는 기간에 따라 여름철새, 겨울철새, 나그네새, 길 잃은 새로 구분합니다. 여름철새는 봄에 와서 번식을 한 후 가을에 월동지로 이동하는 새입니다. 겨울을 지내는 월동지는 우리나라보다 따듯한 지역으로 위도로는 남쪽입니다. 겨울철새는 가을에 와서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에 번식지로 이동하는 새를 뜻합니다. 번식지는 우리나라보다 북쪽의 추운 지역이고요. 나그네새는 우리나라 이외의 번식지와 월동지를 오가다 잠시 들르는 새며, 길 잃은 새는 태풍 같은 이유로 길을 잃고 우연히 찾아든 새를 말합니다.

 

맨 왼쪽에 있는 리더 재두루미가 먼저 땅에 내려앉았어도 구성원이 편하게 먹이활동을 할 수 있도록 경계를 서고 있다.

 

철새는 수천에서 수만㎞까지 이동합니다. 보다 나은 환경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여름철새는 번식하기에 더 유리하기 때문에, 겨울철새는 겨울을 나기가 더 좋기 때문에 찾아옵니다. 몸집이 큰 겨울철새의 경우 먼 거리의 이동은 위험한 여정이지만 이동보다 더 위험한 것은 이동하지 않는 것이기에 이동합니다. 우리나라의 겨울도 만만찮게 춥습니다. 습지와 땅이 얼어붙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항상 얼어붙어 있는 것은 아니며 눈이 오더라도 내내 쌓여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겨울철새에게는 우리나라가 저들의 번식지인 동토의 땅과 비교할 때 더 나은 환경이기에 목숨 걸고 찾아오는 것입니다.

 

겨울철새는 무리를 이뤄 이동합니다. 무리의 규모는 종에 따라 수십에서 수만 개체에 이르기도 합니다. 저들이 번식지에서도 무리를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영역을 여유 있게 확보하고 생활하다 우리나라로 이동하기 직전 무리를 이룹니다. 이동은 편대비행으로 합니다. 기본 형태는 V자 모양이지만 큰 무리인 경우 W자 대열도 취합니다. 편대비행은 에너지 소모를 줄입니다. 일직선이나 특별한 대형 없이 비행할 때보다 V자 대형을 유지하면 에너지 소모가 30% 정도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앞선 새의 날갯짓이 상승기류를 만들어 뒤따르는 새는 그 양력에 힘입어 적은 에너지로 비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의사소통이 수월하며 천적의 공격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수많은 개체가 쉬지 않고 밤낮으로 먼 거리를 움직일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질서입니다. V자 또는 W자 대형 또한 질서이고요. 문제는 누가 리더의 자리에 서서 질서를 바로잡느냐 하는 점입니다.

 

리더는 거친 바람을 처음으로 맞서 비행합니다. 최적의 항로와 고도를 찾아내는 데 필요한 경험과 정보를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위기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정확하고 신속하게 상황을 파악하여 최선의 대처 및 관리능력을 발휘합니다. 그러다 힘에 부친다 싶으면 바로 대열의 뒤로 빠져 새로운 리더가 질서를 다잡게 합니다. 리더는 천적의 주요 공격 대상이니 가장 먼저 목숨을 내놓는 위치입니다. 리더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있는 자리가 아니라, 남을 지켜내기 위해 있는 자리입니다. 결국 제대로 된 리더가 앞에 서면 사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는 것이기에 리더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며, 아무나 해서도 안 되는 자리인 것입니다.

 

성공적으로 이동했다 하여 끝이 아닙니다. 이동은 이동일 뿐이며, 이제 새로운 터전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로 이동해서도 겨울철새는 무리를 이룹니다. 무리를 이루는 것은 먹이 터를 비롯한 다양한 정보의 공유와 천적에 대한 경계 분담 측면에서 유리합니다.

 

어떠한 형태로든 이동은 무척 신중합니다. 몸집이 큰 경우 몇 시간의 먹이활동이 한 번의 헛된 이동으로 다시 빈속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동 시 리더는 역시 맨 앞에 서며, 나머지는 따릅니다. 그렇다고 리더가 제멋대로 무엇을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거나 적어도 대부분이 동의할 때 실행합니다. 구성원은 소리를 내거나 고갯짓으로 동의를 표합니다. 이동이 결정되면 어디로 향할지는 전적으로 리더의 몫입니다.

 

맨 앞에 서기에 맨 먼저 내려앉는 것 또한 리더입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곳에 처음으로 발을 딛는 것은 리더 자신이며, 다른 누구에게 그 소임을 떠넘기지 않습니다. 먼저 내려앉았다 하여 먼저 먹지 않습니다. 무리들이 편안하게 배를 채울 수 있도록 주위를 살펴줍니다. 그러다 위험의 요소가 하나도 없이 완벽하다 싶으면 고개를 숙여 먹이활동을 하는데, 그마저 바로 고개를 들어 다시 주위를 살필 때가 많습니다.

 

철새 리더 이야기를 하며 많이 슬픕니다. “아…, 새의 리더도 이러한데…”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김성호 | 서남대 의대 교수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