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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를 제외하고 전국으로 번진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가 재앙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달 16일 전남 해남과 충북 음성에서 고병원성(H5N6형) AI가 처음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 살처분된 닭·오리 등 가금류는 2000만마리가 넘는다. 하루 평균 60만마리가 살처분돼 전국에서 사육 중인 닭·오리의 13%가 사라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기 안성천의 야생조류에서 고병원성 H5N8형 AI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H5N8형은 2014년 전국으로 번져 가금류 1400만마리가 살처분되는 등 큰 피해를 냈다는 점에서 두 유형의 AI 바이러스가 동시다발로 확산되면 농가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AI 확산에 따른 경제적 피해도 갈수록 늘고 있다. 달걀 한 판 값이 한 달 새 15~20% 급등해 일부 대형마트는 ‘1인 1판’ 제한 판매를 하고 있다. 학교 급식에도 차질이 생겼고, 영세 빵·과자 제조업체들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살처분 보상금과 생계소득안정 등에 드는 국가예산만도 3000억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19일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 차단을 위해 시민 출입이 제한된 서울 강서구 강서습지생태공원 안에서 관계자들이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AI 재앙이 초래된 것은 초동대처에 실패하고 뒷북 대응으로 일관한 무능력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 정부는 AI 의심신고가 접수된 지 한 달 만에 관계장관회의를 처음 열었고, AI가 전국으로 확산된 지난 16일에야 위기경보단계를 ‘심각’으로 올렸다. 방역 골든타임을 놓친 뒤에도 살아있는 토종닭의 유통을 허용했다가 이틀 만에 다시 금지하는 등 우왕좌왕했다. 지자체와의 공조체제도 붕괴됐다. 일부 지자체는 허위 방역신고서를 제출했고, 세종시의 한 산란계 농가는 AI 의심신고 전 닭 10만마리를 출하했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때처럼 초기 대응에 실패해 위기를 키운 정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일본은 지난달 21일 아오모리현에서 AI가 발생한 지 2시간 만에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로 올렸다. 아베 총리는 관저에 ‘AI 정보연락실’을 설치하며 방역상황을 직접 챙겼다. 신속한 초기 대응으로 살처분된 가금류는 78만마리에 그쳤다. 총리를 중심으로 AI 피해를 줄인 일본 사례에 견줘봐도 한국 정부의 위기대응 능력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방역 컨트롤타워를 직접 관장해 AI가 더 큰 재앙으로 번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챙겨야 할 것은 대통령급 의전이 아니라 민생이다. 국가적 재앙이 된 AI 추가 확산을 막는 것보다 시급한 민생 현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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