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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계란 대란

opinionX 2016. 12. 21. 10:57

오랫동안 계란은 건강의 적이라는 누명을 썼다. 1913년 러시아 생물학자 니콜라이 아니츠코프가 “콜레스테롤이 토끼의 혈관을 막는다”는 주장을 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계란은 심혈관질환의 주범이 됐다. ‘계란은 하루에 하나만’이라는 법칙도 생겼다. 그러나 지난해 오래된 철칙이 무너졌다. 미국 정부가 “건강한 성인에게 콜레스테롤이 든 음식이 해롭지 않다”고 발표한 덕분이다. 건강한 성인이라면 콜레스테롤이 많다는 이유로 계란을 한 개만 먹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계란은 완전식품에 가깝다고 한다. 우유와 더불어 단일식품으로 여러 가지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먹거리로 사랑받는다.

한국은 난생설화가 나올 만큼 계란을 사용한 역사가 깊다. 1973년 경주 천마총에서 온전한 모습의 신라시대 계란이 출토되기도 했다. 금관 등 부장품과 함께 매장될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은 것이다. 계란은 주로 병아리를 부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됐다. 문서상 계란을 이용한 요리법은 조선시대 들어서 발견된다. <음식디미방> <주방문> 등에 기록돼 있다. <주방문>에는 계란을 밥 위에 얹어 찌는 알찜의 설명이 나온다.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으로 계란 판매수량 제한 조치가 시작된 20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계란을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에서 소비되는 계란은 백색란은 거의 없고 대부분 갈색란(99%)이다. 둘 사이에 성분상의 차이는 없고, 소비자들이 갈색란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1인당 연간 계란 소비량은 2000년 184개, 2010년 236개, 2014년 254개로 늘어나는 추세다. 3일에 두 개꼴로, 주요 단백질 보충원인 셈이다.

계란은 계절적인 요인이나 전염병 등으로 인해 수급에 변동이 생긴다. 그런데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로 ‘계란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분식집에서 공짜로 제공하던 계란말이는 사라졌다. 김밥 속 계란 지단은 크기가 절반으로 줄고, 기사식당의 ‘서비스 계란 프라이’도 끊겼다. 일부 마트에서는 ‘1인 1판’으로 판매를 제한하기도 한다. 물량 부족 탓에 계란 중개상이 문을 닫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계란 절벽이 현실화하자 급기야 정부는 산란용 닭과 계란을 항공기로 긴급 수입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AI 초동대응에 실패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된 것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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