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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과 계절 사이를 지나고 있습니다. 낮과 밤의 낯빛이 사뭇 다릅니다. 뜨겁고 따갑던 햇살이 물러서자 바로 서늘해집니다. 밤이 깊어지니 한기까지 몰려듭니다. 창문을 반쯤 열어 둔 탓입니다. 닫아야 하겠습니다. 다시 엽니다. 창문을 닫으니 차가운 기운은 막히나 세상의 소리도 끊어집니다. 학교가 숲속에 있는 것은 더없이 고마운 일입니다. 창문만 열어두면 자연입니다. 더군다나 오늘 밤이 마지막일지 모를 소리를 견딜 만한 추위와 바꿀 수는 없습니다. ‘소쩍, 소쩍’.

소쩍새 어미(왼쪽 사진)와 새끼.

‘소쩍새’ 하면 떠오르는 시가 있습니다.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로 시작하는 미당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입니다. 시로 인해 이름은 익지만 모습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소쩍새는 이른 봄 우리나라를 찾아와 여름을 지나며 번식을 하고 가을에 떠나는 올빼밋과의 여름철새로 천연기념물 제324-6호입니다.

숲에서 소쩍새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시기는 4월 중순입니다. 소쩍새가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때입니다. 정말 밤새도록 웁니다. 짝을 찾는 소리입니다. 실제 번식은 5월 하순 즈음 시작하니 짝을 찾는 간절한 소리는 한 달 넘게 이어지는 셈입니다. 소쩍새의 번식은 딱따구리의 번식과 맞닿아 있습니다. 소쩍새는 대체로 딱따구리의 둥지에서 번식을 치르기 때문입니다. 딱따구리 둥지가 비어야 소쩍새는 번식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5월 중순에서 하순에 걸쳐 딱따구리가 번식을 마치고 둥지가 비면 숲에서는 전쟁이 벌어집니다. 딱따구리가 번식을 마치고 둥지가 비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친구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소쩍새 또한 그중 하나입니다.

딱따구리의 번식 둥지는 암수가 교대를 하며 지킵니다. 번식이 진행 중일 때 둥지를 빼앗기 힘든 까닭입니다. 그러다 번식이 끝나면 각자의 길을 갑니다. 어린 새와 암컷은 둥지를 떠납니다. 수컷은 여전히 번식 둥지를 사용하지만 잠만 잡니다. 어두워지면 둥지로 돌아와 잠을 자고 이른 아침이면 먹이활동을 나섭니다. 낮에는 둥지가 비어 있는 셈입니다. 둥지를 오래 지킬 수 없습니다. 기껏해야 사나흘입니다. 어둠이 내리면 딱따구리 수컷은 어김없이 잠을 자러 오지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누군가 벌써 자리를 잡고 있는 탓입니다. 더군다나 고개를 넣어 둥지 안을 살피다 화들짝 놀라며 물러선다면 이미 둥지 안에는 버거운 상대가 버티고 있다는 뜻입니다. 둥지의 새로운 주인은 소쩍새일 경우가 많습니다.

소쩍새는 ‘소쩍, 소쩍’ 또는 ‘솟쩍다, 솟쩍다’ 소리를 냅니다. 소쩍새가 ‘솟쩍다, 솟쩍다’ 소리를 내면 풍년이 든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풍년이 들 터인데 지금 쓰는 솥이 작다는 뜻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하룻밤에도 ‘소쩍, 소쩍’ 울다가 ‘솟쩍다, 솟쩍다’로 바꿔 울기도 하니, 신뢰도는 떨어집니다.

소쩍새를 비롯한 야행성 조류의 번식 일정을 관찰하는 일은 조금 버겁습니다. 낮에는 둥지 밖으로 고개 한 번 내밀지 않다가 밤에만 둥지를 나서서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흘러 소쩍새가 딱따구리의 둥지를 빼앗은 지 꼭 40일째가 되는 날입니다. 둥지가 무척 부산합니다. 조명을 비추지 않아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둥지를 지키는 암컷에게 수컷이 연신 먹이를 나르고 있습니다. 부화입니다. 맹금류의 경우 둥지는 암컷이 지킵니다. 둥지 밖에서 경계를 서는 일과 부화가 일어난 후 어린 새의 먹이를 구하는 일은 수컷이 맡습니다. 암컷은 둥지 안에서 수컷이 전해 주는 먹이를 받아 어린 새에게 나눠 먹입니다. 소쩍새가 알을 품는 기간은 약 25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알은 다섯 개 정도로, 하루에 하나씩 낳으니 산란 기간은 5일로 잡으면 되겠습니다. 10일이 남습니다. 이는 산란에 앞서 미리 둥지를 차지한 기간으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3주가 또 그렇게 흘렀습니다. 드디어 어린 새가 둥지 밖으로 고개를 내밉니다. 세상이 궁금한 모양입니다. 어린 소쩍새는 낮에도 둥지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는 점이 어미 새와 다릅니다. 그리고 어린 새가 스스로 고개를 내밀 정도로 크면 둥지의 공간이 좁아져 둥지를 지키던 어미 새는 둥지에 함께 있지 못하고 밖으로 밀려 나옵니다. 소쩍새가 딱따구리의 둥지를 빼앗은 지 꼭 60일째입니다.

어린 새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면 주위를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둥지가 가장 잘 보이는 곳 어딘가에 비좁은 둥지를 떠난 엄마 새가 숨어서 경계 근무를 서기 때문입니다. 아, 보입니다. 허투루 보면 절대 찾을 수 없는 곳입니다. 아빠 새는 둥지에서 뚝 떨어진 곳에 숨어 있어 찾기 쉽지 않습니다.

어린 새는 주로 밤에 둥지를 떠납니다. 어린 새가 둥지를 떠나기 시작하면 어미 새는 어린 새를 둥지에서 가까운 안전한 곳으로 안내합니다. 이미 둥지를 나선 어린 새가 있고, 아직 둥지에 남은 어린 새가 있다면 어미 새는 둘 다 잘 볼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러다가 어린 새가 모두 둥지에서 벗어나면 둥지 주변을 완전히 떠나 더 깊은 숲으로 사라집니다.

가을 문턱입니다. 쑥부쟁이, 구절초, 산구절초, 개미취, 벌개미취, 산국, 감국을 비롯하여 들국화라 부르는 국화과 식물이 들녘과 산자락을 따라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봄부터 들렸던 소쩍새 소리는 오늘도 반쯤 열린 창문을 따라 흘러듭니다. 소쩍새와 국화는 실제 아무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 가을, 국화 한 송이가 피어난 것이 그냥 핀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오랜 간절함이 쌓이고 또 쌓여 이루어졌다는 생각만큼은 붙들고 싶은 요즈음입니다.

<김성호 | 서남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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