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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 | 이화여대 석좌교수


가까운 일본에 일어난 지진이나 백두산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뉴스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불안정한 기초 위에 놓여 있는가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삶이 자리하고 있는 지각판에 대한 걱정은 인간 실존에 대한 형이상학적 불안에 가깝다. 환경 문제들은 천재보다는 인재라고 하겠지만, 인간이 저지르는 잘못으로 자연이 재난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거기에 대해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가깝게 닥쳐드는 사회나 정치의 문제에 대해서도 속수무책인 것이 오늘의 우리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뉴스 보도를 쫓아가면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부정, 부패, 독직, 폭력, 폭언의 사건들이 터져 나온다. 이것은 사회 전체에 거의 천재지변의 규모로 계속적인 충격을 가하는데, 이러고도 사회가 하나의 질서있는 총체로서 버텨나갈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일게 한다.

금융사기, 전·현직 고위 공무원, 공공기구의 장, 그 인척의 불법, 의료업자들의 탈세, 교육 행정자의 학교 자산 횡령, 교수들의 논문 표절, 학교폭력, 정치인들의 허위 진술 등등 사건이 끊이지 않는 날이 없다.

한 저축은행의 부실 운영으로 예금을 잃게 되는 예금자만 3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숫자로 계산되지 않아도 날마다 터져 나오는 여러 사건들의 피해 규모나 피해자의 수도 그에 못지않게 거대할 것이다. 피해당사자들의 괴로움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러한 사건들이 번져 나가게 하는 불안과 불신은 사회 전체를 잠재적인 만인전쟁의 터가 되게 한다. 이것은 우리의 나날의 삶에서도 느끼는 것이다.

만인전쟁이라는 표현을 만들어낸 홉스가 말한 바와 같이 사람들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싸움에 들어가는 것은 반드시 생명을 보존하려는 본능 때문만이 아니라, 부와 명성 또는 사회적 지위, 권력을 얻고자 하는 투쟁으로 인한 것이기도 하다. 위에서 말한 부정적인 상황과 관련하여 생각되는 아이러니는 최근의 국력 지표들이다. 최근에 어떤 보도들은 한국이 이제 20-50 클럽에 진입했고, 머지않아 30-50 클럽 가입을 내다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 ㅣ 출처:경향 DB

20-50 클럽이란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고 인구가 5000만을 넘는 경제 강국을 말하는 기묘한 용어이다. 한국은 개인 소득에서는 2만2000달러이나, 구매력의 관점에서는 이미 3만달러에 가깝고 수년 내로 일본을 앞지를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적절한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이러한 지표들이 반드시 환영할 만한 사실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황당하게 큰 금액을 횡령하려다가 감옥에 가는 사람들은 경제성장이 만들어낸 부의 꿈에 들뜨게 된 사람들이다. 그러한 위치에 있지 않은 사람들, 또 그래서는 안 되는 사람들도 그와 비슷한 거대한 ‘꿈’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되어 있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또한 그러한 꿈은 공공이데올로기가 되어 가고 있다. 공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지금의 사회에서 경제적 명성은 모든 것의 척도이다. 그리하여 모두가 스스로를 팔 수 있게 다듬어 자산을 늘리고 명성을 얻어야 한다. 심지어 대학에서 학생이 배워야 하는 것도 어떻게 스스로를 유리하게 팔 것인가 하는 것을 궁리하는 것이 되어 간다. 판촉의 강박은, 허황된 꿈과 함께 불안, 폭력, 절망을 낳는다. 그러나 그것은 다시 열광과 광기에 의해 보상된다. 푹 빠지고, 반하고, 소비자를 사로잡는 것, 이러한 것들이 오늘의 문화 가치이다.

이러한 꿈속에 부침하는 삶이 지속 가능한 것일까? 삶의 난장 속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경쟁에서 탈락하여 빈곤과 수모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을 벗어난 사람에게도 문제가 많다고 하는 것이 옳다. 그것이 쉽게 의식되지 않을 뿐이다. 경제의 테두리 안에서만 생각해도 그러하다.

미국의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최근 한 글에서, 공평한 분배는 가진 자를 위해서도 경제의 필수조건이라고 말하고 있다. 소득의 상위권 집중은 결국 소비시장을 위축하게 하여 가진 자의 삶도 어렵게 할 것이라고 한다. 그의 계산에 의하면, 연수입이 2100만달러가 되는 롬니 미국 대통령 후보의 소비 총액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인데 대하여, 그 돈을 연봉 4만3400달러의 직장인 500인에게 나누어주면 그 돈은 결국 시장으로, 생산적 경제로 다시 투입될 것이라고 한다. 그는 한 유엔 위원회의 보고서를 인용해 사회적 불평등은 얼마 안 있어 경제적 불안정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경과에 대한 고려가 저절로 생겨날 수 있을까? 그것은 물론 경제 전체를 생각하는 경제학자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즉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이 경제적 안정 또는 성장이라는 관점에만 한정되어도 충분한 것인가? 무한한 부의 추구--그리고 명성과 지위만을 생각하는 삶이 참으로 인간다운 삶을 고려하는 삶일까? 그것이 삶의 자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것이 의미있는 자아실현의 일부가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저울질하는 중심을 잃지 않아야 그 자원은 참으로 원하는 삶의 수단이 될 것이다.

개인의 삶을 넘어, 나라의 삶에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이다. 다른 정치적 맥락에서 말한 것이기는 하지만, 1차대전 직후의 시대적 혼란을 진단하는,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의 말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중심이 버티지 못한다”는 것이 있다. 중심이 완전히 공허해진 것이 오늘의 우리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사회의 지각판이 계속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끄떡없이 가운데 버티면서 전체를 거머쥐는 것으로 보이는 모든 중심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바른 중심이 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의 정치 분쟁들은 이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전체를 통괄할 수 있는 중심을 가져야 사람은 자기존재를 입증할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혼란의 시대일수록,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중심을 부여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게 마련이다. 여기에 관련된 것이 광신적 이데올로기이다. 그것은 개인들을 연약한 고립으로부터 구하여 단단한 집단을 이룰 수 있게 한다.

이 집단은 절대 충성을 요구하고 배신자의 무자비한 박살을 명령한다. 이러한 집단 이데올로기의 특징은 전체를 포괄하는 듯하면서, 반대되는 모든 것을 분리 제거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전체성의 원리이면서 분열의 원리이다. 이러한 이중성은 정치 투쟁의 현장에서 흔히 보는 일이다.

그러나 진정한 중심은 궁극적으로 사회의 모든 성원, 모든 인간의 포용과 화합을 고려하고 존재 일체에 대한 존중으로 나아가는 원리이다. 세계의 근본 원리에 대한 모든 깊이 있는 가르침은 그것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전한다. “여기 한 가지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스러워 일찍이 나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았다. 이름 지을 길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禪家龜鑑) 이것은 종교적 명상에서나 나올 수 있는 존재의 근본에 대한 어려운 설명이다. 그러나 정치 공동체를 뒷받침하는 중심도, 진정한 중심은 이데올로기나 파당성이나 광신으로 표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중심이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니다. 법이나 정치는 사회의 외면적 제도에 불과하지만, 그 밑에는 최선의 경우, 인간 존재가 규범을 통하여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전제가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법은 인간의 (살인과 약탈을 포함한) 자유를 제한하는 일에 불과하고 폭력 없는 정치는 유혈 투쟁을 사술(詐術)로 위장하는 타협일 뿐이다. 법이나 정치가 인간적 제도가 되는 것은 사람들이 인간 존재의 규범성을 인정할 때이다. 이 규범성은 감성의 차원에서 다시 모든 것을 감싸는 삶의 전체의 신령스러움에 대한 느낌에 이어질 수 있다. 이 느낌은 일상적 삶에 스미고, 문화 그리고 학문적 사고의 바탕으로도 존재한다.

그러나 부와 명성을 더 많이 확보하려는 만인전쟁에서 삶의 중심은 공허한 것이 되고, 법, 정치, 사회관계 그리고 언어 담론은 자기정당화의 방법, 이권과 권력 투쟁의 수단이 된다. 다만 이것은 너무나 많은 것이 변한--경제 발전과 민주주의의 백가쟁명을 포함하여--이 시점에서의 과도기 현상일 것이다--이렇게 생각하여 우리 스스로를 위안할 수 있을는지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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