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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창 | 이화여대 석좌교수


 

최근 언론 매체에 크게 보도된 뉴스 하나는 국내외의 싸이 열풍이다. 싸이는 영국과 미국의 인기가수리스트에서 1등, 2등을 차지했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가고 있는 것을 도처에서 느낄 수 있다. 9월 중순 경주의 국제 펜클럽 대회에 참가한 외국작가들은, 내가 만났을 때, 한결같이 한국의 발전상에 대해 감탄을 표현하였다. 작가들은 경주의 유적과 관리상태, 대회의 조직, 작가들의 발표가 좋았고 길거리가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다고 말하였다. 주마간산의 인상을 요약하는 잡담의 하나는 한국에서는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장바닥에서 음식을 사먹어도 안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서울밤 뒤흔든 강남스타일 (경향신문DB)


 얼마 전 미국의 ‘사이엔티픽 아메리칸’지는 한국 과학 연구 현황에 대한 평가를 담은 글들을 실었다. “2012년 세계 과학의 현재 상황”이라는 특별 보고에 의하면, 과학 수준에서 한국은 전체적으로 10대 과학 우수국에 들고, 세계 우수저널에 수록되는 논문 편수로 따지면, 순위에서 미국, 독일, 중국, 일본, 영국, 프랑스, 캐나다에 이어 8번째가 된다. 이러한 연구와 관련하여 새로운 특허를 낸 숫자로는 (미국 특허상표국 집계) 한국 순위는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번째가 되고, 독일, 대만, 캐나다, 프랑스, 영국, 중국, 이탈리아, 오스트레일리아 등이 그 뒤를 따른다.


눈에 띄는 것은 과학 연구가 미국과 서구로부터 다른 지역으로 확산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려 있는 도표에는 비서구 국가로는 중국, 한국, 인도, 대만, 이스라엘, 싱가포르, 러시아, 홍콩, 브라질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기사 내용은, 한국과 같은 나라의 비약적 발전에 대한 언급도 있지만, 주로 중국과 인도에서의 과학 발전을 주목한다. 대체로 세계 전체를 통하여 과학 발전이 인류 역사의 어느 때보다도 가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재라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바다. 이것은 세계화의 한 부대 효과라고 할 것인데, 세계화가 전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든지, 이 특집에 실린 글들은 적어도 과학 발전에 세계적 교류나 협동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론 물리학을 위한 중요 실험시설인, 제네바의 유럽 입자 물리연구소(CERN)가 운영하는 대형강입자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 인류의 에너지 문제 해결에 궁극적인 답을 기대하면서, 한국을 포함하여 일곱 나라가 발주한, 핵융합발전로(ITER)와 같은 것이 가시적인 국제 협력의 예가 될 것이다. 이 보고에 실린 인터뷰에 나온 영국왕립학회 회장 폴 너스는 DNA에 관계되는 연구로서 노벨상을 받았는데, 이 분야에서 중국 학자들이 내놓는 자료들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과학자들이 국경을 넘어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학문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총론을 쓴 존 섹스튼 뉴욕대 총장도 국제적 교류를 중요 요인으로 지적하면서, 르네상스 시기에 뛰어난 인재들이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로 두루 옮겨 다닌 것과 비슷하게 오늘날 학자들이 미국의 실리콘 밸리, 상하이, 런던, 뉴욕을 자유롭게 옮겨 다닐 수 있는 것이 과학 발전에 큰 자극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제시하는 통계에 의하면, 다른 나라의 집필자와 공동집필한 미국학자들의 논문들이 2006년에서 2008년까지 2년 사이에 12%에서 30%로 증가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근년의 폭발적인 과학 발전은 오랜 문화적 축적에 기초하면서 교육이나 연구에 대한 재정적 정책적 지원이 있어서 가능해진 것이다. 위에 말한 펜클럽 회원들과의 만남에 동석했던 캐나다의 한 외교관은 한국의 교육 인적자원이 한국의 발전 요인이라는 것을 지적했다. ‘사이엔티픽 아메리칸’에 실린 중국의 국제적 진출을 다룬 글은 중국정부가 1990년대 이후 교육에 얼마나 많은 정책과 노력을 투자했는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 결과 고등교육을 받은 학생이 엄청나게 불어났고, 정부의 발전 정책의 수혜대상이 된 100개의 대학이 세계적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상하이 자오퉁대학(交通大學) 교수가 공동집필한 이 보고는 정책적 지원을 얻지 못한 대학의 사정은 여전히 열악한 상태에 있고, ‘관시(關係)’라는 사적 인맥을 중시하는 문화, 정치와 관료제도의 경직성 등이 보다 정상적인 발전에 장해가 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총체적인 업적에 있어서는 미국이 압도적이지만, 과학진흥의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은 독일의 대학들로 이야기된다. 저널리스트 슈테판 타일은 독일의 강점은 연구, 실용 기술 그리고 기업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있다고 본다. 이것이 독일로 하여금, 세계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튼튼한 경제 체제를 유지할 수 있게 한다. 독일의 직물산업은 새로운 기술과 물질의 개발을 통해서 중국과 같은 신흥 산업국가들의 도전을 이겨낼 수 있었다. 뮌헨 공과대학에서 진행하고 있는 연구의 하나는 로봇과 탄소섬유이다. 로봇은 사람의 손으로는 다룰 수 없는 미세한 탄소섬유를 집성할 수 있다. BMW 자동차회사는 탄소섬유로 이루어진 최경량의 전기차를 생산할 계획이다. 칼스루헤 공과대학은 재생에너지를 저장하는 배터리를 제작하기 위한 나노기술과 신자료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드레스덴 공과대학은 전자 관계 회사들과 협동하여 현재의 전자기구가 사용하는 전기의 100분의 1 정도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전자회로를 개발하고 있다. 기업과 대학의 협동은 양 파트너의 직접적인 관계이기도 하지만, 막스플랑크 연구소 그리고 프라운호퍼와 같은 연구기관의 연합 관리 기구에 의하여 중개되는 것이기도 하다.


여러 연구 가운데에도 특히 이러한 연구기구들이 지원하는 연구는 단기적인 수확만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결과를 허용하는 것이지만, 위의 글을 쓴 필자는, 독일의 과학기술 체제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기업과 대학의 지나친 밀착이 현재의 필요에 얽매여 멀리 내다보는 연구를 어렵게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다른 걱정은 기업에 밀착된, 그리고 단기적인 발전을 위한 과학 연구가 참으로 인간의 복지에 기여하는 것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과 소재 개발의 많은 것이 적어도 자원 우호적인 것은 다행한 일이다. 앞에 언급한 섹스튼 총장은 연구의 국제화는 저절로 기후변화, 식량 확보, 기타 인도주의적 과제들을 중요 안건이 되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학발전을 보다 더 긴밀하게 인류 복지에 연결하는 일일 것이다. 한 필자는 학생들로 하여금 과학에 보다 적극적인 흥미를 가지게 하고 과학 발전의 창조적 도약을 위하여, 분과과학을 통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통합은 주로 과학과 사회과학의 통합을 말하는 것인데, 과학을 철학적 문학적 반성에 연결시키는 것은 그것을 보다 본질적인 인간적 의미를 향하여 열어 놓는 것이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인문적 성찰 자체를 교조적이고 독단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과학의 사실적 이론적 엄밀성에 열리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에 궁극적인 모태가 될 문화적 성숙을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여기에서 과학에 대한 보고를 소개하는 것은 반드시 그것을 제대로 논하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공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정치 사회 경제의 의제이다.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의 직무를 논하는 데에서도 그렇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최근의 한 칼럼에서 공화당의 미트 롬니 후보를 비판하면서, “대통령만 교체하면 경제회복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구체적인 정책은 제쳐 두고 자기가 대통령만 되면 만사가 잘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우리도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모든 것이 잘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크루그먼의 말을 좀 더 확대하여 보면, 정책이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장래는 대통령의 한 임기보다는 길게 생각되어야 하고, 대통령의 정책은 넓은 폭의 관심과 장기적인 발전의 방향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야 한다. 과학과 문화는 정책으로 촉진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의제화하는 매트릭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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