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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가끔 페이퍼나이프를 선물받곤 했었다. 그런 선물을 받고 나면 어디서 우편물 올 데가 있을까 기다리곤 했는데, 그 날렵하다고 할 수 없는 칼날로 봉투 끝을 가르는 느낌이 좋았기 때문이다. 내가 예전에 페이퍼나이프를 선물받곤 하던 시절에도 손으로 쓴 편지 같은 게 오던 시절은 아니었다. 그러니 기껏해야 페이퍼나이프를 써서 열어볼 게 고지서 따위들이었는데 그래도 그 사각사각 종이를 가르는 소리가 좋아서 기분 좋게 봉투를 열어보곤 했다. 지금은 그나마도 쓸 일이 없게 되었다. 대개의 우편물은 e메일로 오고, 택배로 받는 물건들은 페어퍼나이프로는 개봉이 되지 않는 게 대부분이니, 이 나이프들은 이제 내 책상 위 장식품이 되었을 뿐이다.

이 나이프는 북나이프로도 불린다. 수공으로 책이 제작되던 시절에는 기술상의 문제로 간혹 페이지가 제대로 절단되지 않은 책이 판매되기도 했던 모양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가끔씩 이 나이프를 써서 페이지를 펼쳐야 했다. 사각사각, 페이지를 열고 나면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그런 책을 제작하기도 했는데, 누구도 손대지 않았던 새 책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했고, 귀한 책인 경우에 그 가치를 드러내기 위한 방편으로 그렇게 하기도 했다. 그래서 언커트 페이지라는 말도 생겨났다. 독자들은 그 페이지를 가르면서 오직 자신만의 책을 갖게 되는 셈이다. 내용은 같더라도, 그 책은 유일하게 나의 것이 되는 것이다.


수공으로 책을 제작하던 시절

제대로 절단되지 않은 책 옆면

지금은 앤틱 구현 장식용 변해

종이에 베이는 게 얼마나 아픈가

사소한 것에 베이는 삶은 어떤가

도톨도톨, 적당하게 베이지 않길


진짜 칼이 아니라 페이퍼나이프가 자른 듯이 매끄럽지 않은 옆면을 가진 책들도 있다. 역시 인쇄와 제본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제작된 책들인데, 단면이 오톨도톨한 이런 책의 페이지를 ‘데클에지(deckle edge)’라고 한다. 데클은 기술상의 한계로 인해 종이를 그런 식으로밖에는 찍어낼 수 없었던 틀의 이름인데, 지금은 책의 앤틱을 구현하는 장식의 이름으로 변했다. 장식성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그런 모양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나도 예전에 그런 책을 한 권 구입한 적이 있었다. 중고서점에서 그런 책을 한 권 사놓고는 이게 불량품인가 고개를 갸웃하고, 혹은 그 정반대로 이게 초판이거나 희귀본이거나 그래서 혹시 무지하게 비싼 책을 내가 발견한 건 아닐까 가슴이 뛰기도 했었다. 책의 내용보다 그 책을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또 들춰보고 하는 게 더 재밌었다. 하긴 그러려고 샀던 것 같기도 하다. 하드커버의 그 두툼한 책을 아직도 읽지 않았으니. 대신에 책장을 정리할 때마다 가끔 꺼내서는 그 옆면을 손 끝으로 만져보곤 한다. 종이의 느낌이 도톨도톨하게 다가온다. 나는 종이다, 혹은 나는 책이다, 말하는 듯한 느낌이다.

새해 들어 하게 되는 이런저런 결심 중에 책정리가 빠지지 않는다. 또 매번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게 그 일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책 정리하는 법이라는 책을 찾아보기까지 하고, 정리하지 않는 것도 그 방법 중의 하나라는 말에 위로를 받기도 한다. 책을 이렇게 쌓아놓고 있는 게 내가 일종의 호더(hoarder, 축적가)가 아닌가 고민을 하는 것도 매해 같은 일이다. 그래서 또 괜히 책장을 대책없이 쳐다보고만 있다가 그 우툴두툴한 데클에지의 책을 뽑아든다. 책장 정리라는 게 시작하기도 전에 지치는 일이라 시작하기도 전에 잠시 쉬려는 작정이다. 그 책을 꺼내 그 도톨도톨함을 만져보는 건 언제나 기분이 괜찮은 일이다.

살아가는 일이라는 게 언커트 페이지를 갈라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내듯이 그렇게 기대에 찬 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걸 알 만큼은 나이를 먹었다. 오히려 대개는 이미 읽은 이야기의 반복인데, 그게 오히려 다행스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것조차 잘 감당하지 못하고 잘 반성하지 못하고 무난히 이어가지도 못할 때가 많다. 그러니 그냥 올해도 이렇게 도톨도톨 살아가게 될 터인데, 혹은 울퉁불퉁하게 살아가게 될 터인데, 그러면 적어도 손을 베이지는 않을 터이니 그것도 괜찮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책 종이에 손을 베이는 게 얼마나 아픈가. 그렇게 사소한 것에 베이는 사소한 삶이 얼마나 아픈가. 내 삶이 사소한 것은 다행인 일이다. 도톨도톨, 뭐, 적당하지 않은가. 그래도 베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올해는 설이 빨라 새해가 되자마자 또 금방 설이다. 새해가 순식간에 두번 시작되는 셈이니, 무슨 계획이든 결심이든 얼른 수정할 수도 있겠다. 덕담과 위로도 얼른 두번 주고받겠다. 어떤 책은 그냥 거기 툭 놓여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좋게 하듯이 말뿐인 덕담이라도 주면서 좋고 받으면서 좋기도 하다. 새해가 시작되고 한 달이 되기도 전에 또 새해를 준비하면서, 올해는 복많이 받아야지, 내게 덕담을 한다. 말뿐이면 뭐 어떤가.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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