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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리를 할 일이 생겼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집에 쌓인 책이 많은데, 그걸 정리하지 못해 거의 무너질 지경이 되었다. 인터넷으로 집 안 정리하는 법, 책 정리하는 법 같은 걸 찾아보았는데, 어떤 정리의 법칙이든 가장 우선되는 건 ‘잘 버리는 일’ 같았다. 우선되는 일인 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책이란 게 과일 껍데기처럼 다 먹어치우거나 아니면 깎아버리거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유행 지난 옷처럼 의류수거함에 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버릴 수 없는 이유는 다양했다. 지인들의 서명이 있는 책들은 물론 버릴 수 없고, 오래전에 밑줄 그어가며 보았던 책들도 버릴 수 없고, 전에는 읽기 싫었지만 앞으로는 읽고 싶어지게 될지도 모르는 책들도 버릴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다 버릴 수 없는 책들이었다.

학창시절에 샀던 책들도 눈에 띄었다. 30년도 더 된, 노랗게 색이 바랜 책들이다. 대부분의 책들은 지난 30년 동안 한번도 다시 펼쳐보지 않은 것들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다시 펼쳐볼 일이 거의 없을 듯싶은데, 이 책들을 한쪽 구석으로 치우는 일이 어려웠다. 추억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없는 돈을 안타깝게 모아 샀던 책들, 그중에는 엉뚱한 표지로 제목과 내용을 가려놓은 금서도 있었다. 당시에는 금서도 많았고 그 금서들을 배포하는 방법도 많았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책들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많은 건 소설책이다. 한 번 읽은 책도 있고 몇 번 읽은 책도 있고, 펼쳐보기만 하고 만 책도 물론 있다. 모두들 나름대로 내 책장에서 나이가 들었다. 최근 어떤 작은 모임에서 요즘 시대에도 여전히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대단히 새로운 질문이 아니었음에도, 이런 질문을 받으면 언제나 그런 것처럼 좀 불끈했다. 발끈이 아니라 불끈이다. 나한테는 소설 쓰는 일이 맛있거나 맛있지 않거나 아주 좋은 밥상을 차리는 일과 같고, 그 밥상 차려놓은 후에는 이게 맛있기까지 해야 할 텐데 하면서 살짝 MSG의 유혹도 받고, 차림이 이쁜가 사발과 대접 놓임새도 신경 쓰고, 아무튼 그러한 일인데, 누군가 그걸 먹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묻는다면 거기에 조리있는 대답이 있을 리가 없다. 불끈, 드셔보시지요, 할 뿐이다.

불끈이든 발끈이든, 이렇게 감정이 앞서면 대답에 조리가 없기 마련이다. 그때 톨스토이 얘기를 했었다. 독후감 같은 것을 쓸 일이 생겨서 근래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한 권당 600페이지가 넘는 총 4권 분량의 긴 책이다. 이 책의 감상문을 쓸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서 편집자가 ‘혹시 체력이 허락된다면’이라는 농담 같은 말을 덧붙였을 정도다. 그만큼 압도적인 길이이기도 하거니와 그 촘촘한 짜임새의 긴장이 만만치 않다는 뜻임을 알아들었다. 아주 오래전에 이 책을 읽었을 것이다. 읽었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과연 제대로 된 <전쟁과 평화>를 읽어본 적이 있었던 것인지 자신할 수가 없어서이다. 아주 어렸을 때 어린이용으로 편집된 세계명작 동화로도 읽었던 것 같고, 촘촘하게 인쇄된 몇 권의 책으로도 읽었던 것 같지만, 기억이 다 가물가물하다. 완전히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읽기 시작했다.

책은 새롭게 읽을 때마다 그 울림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건 물론 달라져있는 내 삶 때문이다. 책을 다시 읽는 나는 매번 전보다 더 나이가 들어있다. 빛나던 열정과 결기는 좋게 얘기하면 성숙해져있지만 나쁘게 얘기하면 소심하게 빛을 잃었거나, 심지어는 비겁한 방식으로 잊혀지기도 했다. 오래된 소설을 읽는 즐거움, 추억을 더듬는 안타까움과 쓸쓸함도 즐거움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분명히 오래된 소설을 읽고 또다시 읽어보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안타까움과 쓸쓸함을 넘어 갑자기 환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어떤 한 문장 때문일 수도 있고, 여전히 기억 속의 어느 한순간을 찌르는 듯한 장면 때문일 수도 있고, 뭐라고 딱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옆에서 들리는 듯 자주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작가의 숨소리 때문일 수도 있다. 200년 전을 살았던 대작가 톨스토이의 숨소리를 듣는다니, 근사하지 않나.

낯선 나라의 낯선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다. 귀족들의 삶, 황제를 위해 기꺼이 바치고 싶은 목숨, 전쟁에 대한 광적인 열정, 그리고 그들이 사랑하는 방식, 모든 것이 오늘날의 우리와는 다르다. 그 다름은 충분히 흥미롭지만,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다름 속에서도 ‘여전히 관통하는’, ‘여전히 같은 것들’이다. 전쟁 속에서 펼쳐지는 오만과 허위, 그 전쟁이 앗아간 목숨들, 그리고 파괴된 사랑들, 그래도 여전히 삶은 이어진다는 것.

이 소설에는 느닷없는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단히 빠른 전개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 시간과 그 시간 속의 사람들, 그리고 결국 그로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역사를 쫓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이렇게 읽히는 것, 한 장 한 장, 한 줄 한 줄, 더듬어가듯 읽히는 것을 천천히 쫓아 읽는 게 책을 읽는 즐거움이지 싶었다.

전쟁에 관한 소설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무수하다. 전쟁의 역사가 끝나지 않는 한,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작가는 자신이 겪고 있는 가장 끔찍한 전쟁을 묘사하고 있을 것이다. 물리적인 전쟁의 한복판이 아니더라도 세상의 도처에서, 우리나라의 도처에서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 누구나 그러할지도 모른다. 소설 속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사람들처럼, 특별히 내세울 게 없어서 국민 중의 한 사람, 서민 중의 한 사람으로 불리는 대부분의 사람들 삶이 정작 그러할 것이다. 그들, 우리들의 삶이 차근차근 위로받기를 바란다. 누가 봐도 정쟁으로 보이는 그런 싸움 말고, 이름 없는 사람들의 편에 선 정치를 기대한다. 어떤 정치인이나 자신이야말로 그렇다고 말할 것이고, 그중 많은 정치인들의 말을 믿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믿을 수 있는 건 이름 없이도 이루어냈던 우리들의 승리의 기억이다. 그러니, 국민의 감시가 무서울 것이다. 지난 세월, 뒤로 간 시간들이 너무 길었다. 서둘러, 그러나 차근차근, 아주 긴 책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듯이, 한 문장 한 문장 빼놓지 않고 읽듯이, 그러다가 책의 한 권 한 권이 쌓여가는 것을 보듯이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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