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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과 마주칠 가능성이 멸종 위기 동물을 발견하는 것만큼 희귀해진 세상이다. 어느새 그렇게 되었다. 다들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가려 작정한 듯 액정화면에 코를 박고 있다. 그렇다고 책 읽는 사람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카페에서 책보면서 공부하는 소위 ‘카공족’은 2017년 대한민국의 특징적 도시풍경을 연출하는 인물들이다. 어떤 사람은 아예 책과 거리를 둔 삶을 살지만, 어떤 사람은 여전히 책을 읽는다.

대충 보면 ‘초록은 동색’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초록색 사이에도 뉘앙스 차이가 있다. 띄엄띄엄 관찰하면 유인원은 동일한 동물처럼 보인다. 오랑우탄과 침팬지는 거기서 거기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이들은 각각 다르다. 개코원숭이는 육식이지만 긴팔원숭이와 침팬지는 잡식이고, 고릴라는 채식하며 오랑우탄은 과일만 먹는다. 침팬지는 사람에 못지않은 평균수명 60여년을 자랑하고, 꼬리감은 원숭이도 40년을 살지만 알락꼬리 여우원숭이는 겨우 20년간 수명을 유지한다. 안경원숭이는 몸길이가 10~15㎝ 정도에 불과하지만 고릴라는 사람만큼이나 크다. 침팬지는 사납고 난폭하지만 보노보는 온순하고 섹스를 좋아하기로 소문나 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국민독서실태조사’는 지난 1년 동안 교과서, 학습참고서, 잡지, 수험서, 만화를 제외한 일반도서를 1권 이상 읽은 사람을 독서인으로 분류한다. 2015년 조사를 보면 한국인 중 65.3%가 독서인이다. 10명 중 6~7명은 책 읽는 사람이고 3명은 책 안 읽는 사람으로 분류되는 셈이다.

책 안 읽는 10명 중 3명의 사람 때문에 일견 독서인은 나름 괜찮은 교양인처럼 보인다. 이 판단엔 모든 책은 훌륭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렇지만 책은 그저 미디어 형식을 지칭하는 단어일 뿐이다. 책 그 자체도, 책이 만들어지는 출판계도 신성시할 필요는 없다. 세상에 있는 더러운 때만큼의 때가 출판계에도 있다. 불황을 구실 삼아 저술노동자 임금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장도, 노동권조차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편집노동자와 조금만 뜨면 거들먹거리는 저자도 있는 곳이 출판계이다.

베스트 셀러만을 읽는 독서인도 있다. 베스트 셀러의 품질 논란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어느새 저자는 책을 출판할 만한 지적 능력과 필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유명인이라는 뜻으로 슬쩍 바뀌었다. 그 유명인이 직접 썼는지는 의심스러우나 유명인의 책이라는 이유로 베스트 셀러가 된 책만을 읽는 사람이라면 상품물신성에 빠진 트렌드 추종자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세상에는 책이라는 미디어로 가공되어야 할 이유가 충분한 내용을 담은 책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책이라는 형식에 담길 이유가 전혀 없는 내용이 수록된 책도 있기에 모든 독서인을 교양인 취급할 수 없다. “허리를 숙였을 때 젖무덤이 보이는 여자”를 끌리는 여자라 하고 “콘돔을 싫어하는 여자”를 하고 싶은 여자로 규정하는 내용이 담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큰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아니 이런 경우라면 차라리 책 안 읽은 편이 책 읽은 편보다 나을 수도 있다.

책을 싫어하는 사람도 당연히 있다. 역설적으로 어떤 책은 어떤 사람을 책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하필이면 처음 잡은 책이 한치의 부끄럼도 없이 과거를 정당화하려고 쓴 <전두환 회고록>이라면 이 사람은 인생 내내 책을 멀리할지도 모른다.

글을 몰라 책을 못 읽는 사람도 있다. 문맹률이 전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 ‘국뽕’맞은 소리를 늘어놓는 턱에, 실질 문해율이 얼마나 낮은지 우리는 잊는다. 노인인구의 상당수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글을 모르거나 실질 문해율이 낮아서 책을 못 읽는 사람이다. 이들에게 책이라는 미디어는 낯설기만 하다. 이들은 독서공중이었던 경험이 없으며 대중미디어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철석같이 믿어버리기에 마타도어에 영향받기 쉬운 사람이다.

책을 읽을 수 있는 문해력도 지녔고 경제적 여유도 있으나 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도 있다. 학생부와 이력서에 한줄 더 채울 욕심으로 책을 읽기에 독서의 결과가 교양이 아니라 스펙으로 남는 사람도 있고, 깊게 생각하기보다 기성의 권위를 책인용으로 대체하려는 목적으로 책을 읽기에 책을 아무리 읽어도 인품은 인용한 책의 권수만큼 늘어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책깨나 읽었을 게 분명하지만 청와대 고위직 문턱에서 평소의 품행을 고발하는 제보로 주저앉은 대학교수도 있으니 독서인이 품행보증수표가 아님은 분명하다. 각자의 사정은 다르다. 사정만큼이나 책을 대하는 심정도 다르다. 그렇기에 독서의 계절이라는 표현이나, 거두절미하고 책을 읽자는 캠페인이 가끔 공허하게 들리기도 한다.

아예 책을 안 읽는 것보단 책 같은 책을 골라 제대로만 읽는다면 책을 읽는 게 더 낫다. 무작정 책만 읽을 게 아니라 가끔은 책을 덮고, 책을 읽고 대체 오랑우탄이 되려는지 침팬지가 되려는지 아니면 유인원보다 그래도 나은 사람이 되려는지 자문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나 또한 이 자문을 피할 수 없다.

노명우 | 아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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