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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이 끝나간다. 이번 방학에도 초등 저학년 자녀를 둔 맞벌이 부모들은 아이들의 ‘밥’ 때문에 속을 끓였다. 학교에서 방과후교실을 운영하지만 방학 중엔 급식이 제공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아이를 점심밥 챙겨주는 학원에 보내거나, 아파트 상가 식당에 월식을 끊는 등 아이들의 끼니를 해결할 방법을 각자 찾아야 했다.

저소득층 아이들도 학교급식이 끊긴 방학에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쉽지 않다. 한 끼당 4000~5000원가량 지원되는 급식비로 선택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편의점 도시락 정도다. 식당에 가더라도 급식카드 사용이 가능한지부터 물어야 하는 상황은 아이들을 주눅들게 만든다.

아이들의 ‘밥’은 이 사회의 부실한 돌봄 시스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다. 식사란 끼니를 때우는 것,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서는 행위다. 아이들이 ‘눈칫밥’을 먹는 사회는 기본적인 생존을 안심할 수 없는 사회, 서로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사회를 뜻한다.

2013년부터 일본에는 ‘어린이식당’이 생겨났다. 처음 어린이식당이 생긴 곳은 도쿄의 한 채소가게였다. 동네에 제때 밥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주인이 가게 한쪽을 활용해 저녁식사를 제공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가정 해체 등으로 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아동이 늘고 빈곤아동대책법이 제정되면서 어린이식당은 일본 전역에 자발적으로 퍼져나갔다. 빵집, 카페, 마을주민센터, 생협, 개인주택 등 현재 2200여곳에서 열고 있는 어린이식당의 연간 이용자 수는 1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기존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사회에 필요한 가치를 재생산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확산성이 높다. 엄마들과 지역 상인 등 주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며 민과 관의 협력으로 사회적 돌봄을 회복하고 있다는 점은 더욱 눈여겨볼 만하다.

‘한 끼 식사’를 목표로 시작했지만 일본의 어린이식당은 단순한 식사 제공을 넘어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하교 후 안심하고 찾아갈 곳이 생겼다.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와 숙제도 봐주고 함께 놀아주면서 건강한 식사와 함께 안전한 돌봄도 가능해졌다. 홀로 사는 노인들, 늦게 퇴근한 직장인, 육아에 지쳐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힘든 엄마들이 찾아오기도 하는 등 이곳을 이용하는 층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2년 전, 잡지 ‘민들레’에 일본의 어린이식당 기사를 싣고 나서 제주시 독자들이 아파트 단지에 있는 육아 공간을 활용해 어린이식당을 시작했다. 최근엔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도 어린이식당을 열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한 달에 한 번 마을특화사업으로 추진하는 이 어린이식당은 구의 예산과 지역사회 시민들의 자원봉사와 후원으로 꾸려지고 있다. 올해 3월 문을 열었는데 매번 50~60명의 어린이와 청소년, 주민들이 이용하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금세 겨울방학이 돌아오고, 부모들은 다시 아이들의 돌봄을 고민할 것이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돌봄 공백을 막기 위해 초등학교 저학년의 수업시간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지만, 당사자인 아이들 입장에서 정말 필요한 돌봄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일본처럼 우리나라에도 곳곳에 어린이식당이 생기면 어떨까. 서로의 끼니를 걱정해주고, 바쁜 부모를 대신해 동네 아이들을 함께 돌보면 어른들의 삶도 조금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싶다.

<장희숙 |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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