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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 남자.’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의 별명이다. 윤 의원이 19대 국회의 첫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로 있을 때 거의 매주 일요일 여의도 당사를 찾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여권을 옹호하는 역할을 도맡은 데 따른 것이다. 친박근혜계 주류로 분류되는 윤 의원은 특유의 성실함과 정보·분석력을 바탕으로 국정원 댓글 의혹사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등 굵직한 이슈에 대응했다. 이런 ‘공’을 인정받아 지난해 5월 사무총장으로 ‘영전’하기도 했다.

윤 의원은 지난해 7월 비주류인 김무성 대표 체제가 들어서면서 당직을 떠난 뒤 사실상 두문불출했다. 그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지난해 말 친박계의 대규모 송년모임에서였다. 김무성 대표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쏟아진 이날 윤 의원은 ‘일요일의 남자’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의원들의 발언 요지”라면서 그가 전한 얘기는 귀에 쏙쏙 들어오는 내용이다. 윤 의원은 “지난 전당대회 때 당 대표 득표율은 29.6%인데 지금 당을 운영하는 모습은 92%인 ‘득템’을 하고 있다”며 “당은 한 배를 탄 공동 운명체라고 하지 않나.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을 껴안고 대화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전했다. ‘운좋게 획득했다’는 뜻의 인터넷 은어 ‘득템’을 사용해 ‘득표율 29%’인 김 대표의 독단적 운영을 꼬집은 것이다.

윤 의원의 발언에서 일종의 기시감(旣視感)을 느꼈다. 김 대표 비판론의 구조가 박근혜 정부 3년차를 맞아 각종 여론조사와 전문가 제언 등에서 확인된 내용과 겹쳤기 때문이다.

“득표율은 29.6%인데 당을 운영하는 모습은 92%”라는 논리를 그대로 적용해보자. 지난 대선에서 51.6%의 득표율을 기록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어떻게 평가될까.

박 대통령은 대선 직후 자신을 찍지 않은 48.4%까지 껴안는 ‘덧셈의 정치’를 약속했다. 대선 다음날인 2012년 12월20일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대선 과정에선 “저에 대한 찬반을 떠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3년차를 맞는 지금 박 대통령이 이 같은 약속을 지켰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박 대통령이 지난 2년간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과 세월호 참사 등 각종 현안들이 닥칠 때마다 통합과 상생의 정치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가 상당수다.

이런 평가는 경향신문 신년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난다. 박 대통령이 ‘국민통합 약속 이행을 못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60.9%였다. ‘잘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30.6%)보다 2배 가까이 많은 수치다. 친박계가 김 대표에게 요구한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을 껴안고 대화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박 대통령은 보여줬는지 의문표가 달린 셈이다. 진보·중도·보수를 아우르는 전문가들은 올해 박 대통령이 해야 할 일로 소통 강화 등 통치 스타일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김 대표의 독단적인 당 운영을 비판한 친박계의 송년모임이 있던 날 공교롭게도 박 대통령이 대선 승리 2주년인 12월19일 친박계 중진들과 비공개로 만찬을 한 사실이 알려졌다. 김 대표 등 비주류 중진은 초대받지 못했다. 이를 두고 박 대통령이 친박계만 챙겨서 당을 친정 체제로 끌고 가려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 대통령, 취임 후 첫 기자회견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구상 발표 및 내외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박 대통령은 다음주 월요일 신년 기자회견을 한다. 지금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적지 않다. 인적 쇄신 등 청와대 쇄신론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아마 국민들은 친박계의 비판에 대한 김 대표의 대응보다 박 대통령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 관심이 더 갈 것이다. 친박계의 김 대표 비판을 원용하자면 “51.6% 득표율로 ‘득템’한 모습만 보일지, 아닐지” 말이다.


김진우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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