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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부동산 투기 의혹이다.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이야기다.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준비된 총리 후보라기에 좀 다를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역시나다. 고위 공직자 인사검증의 단골 메뉴인 부동산 투기 의혹이 하루가 멀다하고 터져나온다.
요 며칠 새 확인된 ‘팩트’만 추려보자. 이 후보자는 2003년 1월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아파트의 8억8000만원대 분양권, 이른바 ‘딱지’를 11억7980만원에 사들였다. 원소유자가 건설사에 지급해야 할 미납금 8800만원은 따로 떠안았다. 웃돈을 얹어 ‘딱지’를 매입하는 건 부동산 투기에 흔히 쓰이는 수법이다. 이 후보자는 이 아파트를 10월 16억4000만원에 되팔았다. 불과 9개월 만에 3억7000여만원의 시세차익을 남겼다. 취득세·등록세와 양도소득세를 빼고도 앉은 자리에서 2억2000여만원을 벌었다.
2억2000만원은 월 급여 200만원인 직장인이 9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하는 액수다. 올해를 기준으로 최저임금(시간당 5580원) 노동자가 주말을 제외하고 매달 22일 하루 8시간씩 총 18년6개월간 꼬박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이 후보자의 장인·장모는 경기도 분당의 토지를 2000·2001년 7억5600만원에 매입한 뒤 2002년 딸(이 후보자의 부인)에게 증여했다. 이 후보자의 부인은 이 땅을 2011년 다시 차남에게 증여했다. 현재 이 땅의 공시지가는 20억원대, 실거래가는 30억원대다. 증여세 5억원을 제하고도 14년 새 20억원에 이르는 시세차익이 생긴 것이다. 최저임금 노동자가 169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가능한 액수다.
검증을 요하는 사안도 수두룩하다. 분당 토지를 둘러싸고 제기된 의혹들, 이를테면 당시 공동 여당 소속 의원으로 국회 재경위에 있던 이 후보자가 개발 호재를 미리 알고 땅을 사들인 것 아니냐는 의혹 등은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공직자가 직무상 알게 된 정보를 활용해 사익을 취했다면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총리의 자질·자격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혹여 부동산을 매매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과정에 한 점이라도 위법이 있었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위법이 없었다고 만사형통은 아니다. 고위 공직자, 특히 국정 운영의 한 축인 총리가 갖춰야 할 자질은 단지 ‘위법이 없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답답한 ‘불통의 시대’에 총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시민과 공감하는 능력이다. 시민이 눈물 흘릴 때 함께 울고, 시민이 분노할 때 함께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잘 안되면 노력이라도 하고, 그것도 힘들면 연기라도 해야 한다. 총리의 몸짓, 말투, 표정 하나하나가 시민에게 전하는 메시지이자 정치행위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왼쪽)와 유성엽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특위 야당간사가 28일 국회 대표회의실에서 열린 인사청문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 후보자가 타워팰리스 투기 의혹을 해명하며 내놓은 문구를 곰곰이 되씹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는 “매각 후 5년 동안 가격이 30억원 가까이 올랐다면 투기 목적의 매매는 아니다”라고 했다. 타워팰리스를 팔지 않고 계속 보유했더라면 십수억원의 시세차익이 생겼을 텐데, 일찌감치 팔아치워 3억7000여만원의 시세차익만 남겼으니 투기는 아니라는 논리다.
이 후보자가 집 없는 서민이나 학자금 대출금을 갚느라 허리가 휘는 대학생, 해고 불안에 떠는 비정규직, 최저임금을 밑도는 급여를 받고 하루하루 열정을 소진당하는 알바·인턴 청년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9개월 시세차익 3억원대’가 그들에게 줄 박탈감과 허탈감을 다소라도 감안했다면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투기 목적의 매매가 아니었다’고 관료주의적 언어로 해명하기 전에 ‘죄송하다’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을 것이다. 속마음이 그렇지 않다면,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척이라도 했을 것이다.
정제혁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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