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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역술인들을 찾아가 대통령의 운세를 수집했다. 대통령 이명박에게는 “지산겸(地山謙) 지풍승(地風昇)의 운을 갖고 있어 국운 상승을 이끌어나갈 것”, 박근혜에게는 “청와대가 어머니 치마폭에 감싸인 형세이듯이 혼란스러운 기운을 여성 대통령님의 덕으로 감싸게 될 것”이라고 보고했다. 지금 두 사람은 법의 심판을 받고 있다.
정치는 살아있고 권력은 눈앞에서 아른거리니 정치인들은 점괘나 술수에 약할 수밖에 없다. 지난날 대권에 가까이 갔던 거물들은 거의가 조상 묘를 옮겼거나 새롭게 다독거렸다. ‘논두렁 정기라도 받아야 뜻을 펼 수 있다’는 속설은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자질을 부풀리며 어딘가에 음덕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지금도 누군가는 운명에 금칠을 하려고 점을 보거나 명당을 찾아 헤맬 것이다.
흥선군 이하응은 아들을 왕으로 세우기 위해 하늘이 놀랄 일을 벌였다. 명당을 차지하려 사찰을 불태우고 탑을 허물었다. 당대의 지식인 황현은 이런 사실을 <매천야록>에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남연군은 아들 넷을 두었고 막내가 흥선군이었다. 흥선군은 세도가 김씨들의 가랑이 사이를 기면서 ‘상가의 개’처럼 굴러다녔다. 아버지 남연군이 죽자 세상을 바꿀 비책으로 명당을 찾아 나섰다. 지관이 가야산 가야사(대덕사)에 이르러 오래된 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곳은 큰 길지이니 얼마나 귀하게 될지 모르오.” 흥선군은 주지에게 거금을 쥐여주며 가야사를 불태우게 했다. 부친 묘를 이장하는 날, 형들의 꿈에 흰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났다. “나는 탑신이다. 어찌 너희가 내 사는 곳을 뺏으려 하는가. 장례를 치른다면 너희 형제는 죽을 것이다.”
신기하게 형들은 같은 꿈을 꾸었다. 겁에 질린 형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흥선군이 소리쳤다. “귀신이 나타났다면 명당이 분명하오. 날마다 장동 김씨 문전에서 옷자락을 끌며 빌어먹는 것보다 한 번에 통쾌해짐이 좋지 않겠습니까.” 결국 석탑을 해체하고 남연군을 묻었다. 꿩이 엎드린 복치형(伏雉形)의 천하명당이었다. 이장을 마치고 가야사 주지와 함께 귀경길에 올랐다. 막 수원 대포진(大浦津)을 건너는데 주지가 배 안에서 발작을 일으켰다. 머리를 휘저으며 “불을 꺼 달라”고 악을 쓰다가 물에 뛰어들어 죽었다. 그로부터 14년 후 흥선군이 사내아이를 얻었다. 훗날 고종이었다.
얘기가 황당해서 믿기 어려웠다. 그런데 고승들 행적을 기록한 <동사열전(東師列傳)>을 보다가 흥선군이 탑과 절을 불태운 것이 사실임을 알았다. “덕산(충남 예산군) 상왕산에 있는 일명 ‘가야산 보덕사(保德寺)’를 ‘생왕산 보덕사(報德寺)’로 고쳤다. 새 터를 잡아 새 절을 짓고 옛 절터에는 남연군의 묘를 면례(緬禮·이장)한 뒤 벽담대사가 남연군의 묘를 수호하게 했다.” 고종이 왕위에 오른 후 왕실은 후환이 두려웠다. 불타버린 천년고찰 가야사 음지에 새 절을 지었다.
나라가 어렵고 왕이 실정을 할 때마다 백성들은 ‘명당의 저주’를 떠올렸을 것이다. 고종은 무능했고 최악의 군주였다. 대원군에 업혀 있다가, 부인 명성황후의 치마폭에 감싸여 있다가, 외세를 끌어들여 더부살이를 했다. 고종이 아니었더라도 나라는 망했겠지만 고종이 왕이라서 더 남루하고 비참했다. 고종과 아들 순종은 굴욕의 역사에 박혀있는 허수아비들이다. 백성의 마음을 얻었다면 황현이 정색하고 명당이야기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살펴보면 권력의 명당은 민심이다.
땅에는 나름 임자가 있다. 땅은 거짓도 없고 그렇다고 용서도 없다. 임자 아닌 자가 차지하면 땅도 사람도 편치 않다. 그래서 명당은 찾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가는 것이라 했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평생 고난의 길을 걸었던 전직 대통령이 오색토에 묻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고단한 몸을 가장 좋은 흙이 품어주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아무리 용한 지관이라도 어찌 흙속을 꿰뚫어보겠는가. 아마도 그는 국민들 마음속에 묻혔고, 민심이 지관의 눈을 밝게 했을 것이다.
“좋은 땅이란 좋은 사람에게만 주어진다는 풍수의 원칙이 있음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선덕(善德)이 좋은 땅이라는 응보(應報)로 주어진다. (…) 명당은 인간 세상을 떠나 아무도 모르는 어디엔가 존재하는 땅이 아니다. 이미 하늘이 알아 천복을 내리며, 땅이 그것을 집행한다.”(최창조)
총선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정치인생의 길흉을 물을 것이다. 조상의 음택을 살필 것이다. 하지만 명당을 찾아 산야를 헤맬 일이 아니다. 저자에 내려가 민초들을 보듬어야 할 것이다. 정치인의 명당은 국민의 마음속에 있다.
<김택근 시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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