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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혼밥’을 할 때면 물에 밥을 말아서 김치만 꺼내 먹기도 하고 싱크대 앞에 서서 먹기도 한다. 혼자 먹자고 지지고 볶는 일도 번거롭거니와 요리의 필수 과정인 설거지가 귀찮아서다. 최대한 설거지거리를 줄이는 것이다. 그나마 식구들과 함께 먹을 때나 찌개라도 끓이고 계란말이라도 부친다. 

도시보다 농촌이 더 빨리 혼밥시대를 맞이했다. 자녀들은 진즉에 대처로 나갔고, 배우자 사망(주로 남편) 이후 홀로 지내는 노인들이 많아서다.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차지하면 초고령 사회라 한다. 농촌은 65세 이상 고령 농민이 40%를 넘어섰고 해마다 사망인구가 늘어 농촌 마을은 빠르게 비어 간다. 농촌 노인 문제는 빈곤과 장애 문제가 중첩돼 있는 데다 여성화 경향도 뚜렷하다. 이는 홀로 사는 할머니들이 아픈 몸을 끌어안고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뜻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농촌 노인들의 생활비 중 식료품비 지출이 80%에 육박한다. 소득이 빈곤선에 닿아있기 때문에 그만큼 엥겔지수가 높다. 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 결과를 보면 농촌 노인들이 식사에서 느끼는 고충은 양은 물론 질도 떨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농촌에는 먹을 것이 지천일 것 같지만 이는 도시인들의 착각이다. 채소는 텃밭에서 조금 지어 먹더라도 과일과 생선, 고기, 가공식품은 현금으로 사야 한다. 심지어 쌀도 산다. 그래서 돈이 부족하면 식단은 부실할 수밖에 없고, 여기에 혼자 차려 먹기까지 하니 밥상은 스산하기 마련이다. 

다행인 것은 몇 년 전부터 ‘농촌마을 공동급식 지원사업’이 실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을회관이나 노인정에 모여서 주민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일이다. 2012년부터 일부 지자체에서 농번기인 모내기철에 취사 도우미 인건비를 지원했는데, 반응이 좋아 전국 지자체로 확산 중이다. 5월 즈음은 하곡을 추수하고 과수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철이기도 해서 한시적인 지원이지만 주민들의 반응이 매우 뜨겁다. 농번기에 가사노동 부담이 줄고 좀 더 풍성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데 주민들은 의외로 함께 먹는 재미에 높은 점수를 매겼다. 충남연구원 박경철 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마을 공동급식의 좋은 점으로 ‘마을 주민 간 공동체성 회복’과 ‘혼자 먹는 외로움의 해소’를 꼽은 응답 비율이 도합 60%를 넘는다. 

하지만 역시 많이 아쉽다. 요즘 농촌에서는 시설재배와 축산업이 확산되면서 농번기가 따로 없을 정도다. 사시사철이 농번기다. 수도작의 경우에는 가을 추수기도 농번기다. 지자체들도 마을 공동급식 사업의 긍정적인 효과를 잘 알고는 있지만 빠듯한 재정 때문에 충분한 예산 지원을 하지 못한다. 실제로 공동급식을 신청한 마을의 절반 정도도 지원하지 못하는 지자체가 많다. 게다가 인건비만 지원되고 부식비는 마을에서 자체 조달하는 경우가 많아 식단의 질적 측면에서도 부족하다. 거동이 불편해 마을회관까지 나오지 못하는 주민들은 이 사업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 직접 집에 가져다주는 것은 마을회관에 모이는 주민들도 보행기 없이는 움직이기 어려운 노인들이어서 힘들다. 그래서 집에서도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는 반조리식품이나 도시락 배달 같은 사업을 병행했으면 한다. 학교급식이나 거점 조리시설과 연계할 수 있다면, 식재료가 지역에서 생산된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아이디어는 늘 넘쳐난다. 아쉬운 것은 돈과 사람이고 이는 곧 정치의 문제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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