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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부터 ‘죽이는 글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참여자가 일주일에 세 차례 글을 올리면 해당 글에 댓글로 조언하는 방식이다. 프로젝트를 위해 마련된 비공개 카페를 틈나는 대로 방문해서 글을 읽는 게 어느덧 일과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세 편의 글을 한 번에 몰아서 올리는 분들도 있고 하나의 이야기를 연재 형식으로 나눠서 게시하는 분들도 있다. 어쨌든 참여자들 모두 틈나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 일과의 한 부분이 오롯이 ‘쓰는’ 시간으로 채워진다는 것이다. 지금도 누군가 어디선가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리고 그 글을 다름 아닌 내가 가장 먼저 보게 된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참여자들이 올리는 글의 형식 또한 다양하다. 보통은 에세이 형태를 띤 글들이 많지만, 르포 형식의 글도 간간이 눈에 띄고 팩션(faction) 느낌이 물씬 나는 글도 있다. 내가 시인이라 그런지 시를 올려주시는 분들도 있다. 글쓰기 코치로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코칭을 하면서 발견하는 것은 참여자가 올린 글의 부족한 부분이 아니라 내가 미처 잡아채지 못한 일상의 반짝임이었다.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자기만의 화법으로 전달하려는 간절한 몸짓이었다. 그 몸짓 하나하나에 마음을 담아 화답하는 게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글을 읽으며 일상의 반짝임은 기쁨에서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예기치 않은 슬픔이나 상실감에서 비롯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절절히 깨닫는다.

그들은 모두 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밖에서는 공공연하게 떠들지 못했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이야기, 누군가에게는 지나치는 풍경에 불과할지라도 내 가슴에 다가와 단박에 얼어붙어버린 순간에 대한 이야기, 어떻게든 지우고 싶지만 발설하지 않으면 끝끝내 해소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 나를 향한 이야기, 나로부터 발아해서 나에게 가까스로 도달하는 이야기. 그 이야기들을 읽으며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은 사람에 대해, 그 사람의 삶에 대해 상상하게 되었다.

각자의 삶이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댓글을 썼다 지웠다 반복한다. 어떤 글은 첨삭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졌다. 내가 누군가의 삶에 함부로 무언가를 보태거나 뺄 수는 없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때마다 내가 말하는 것이 바로 꾸준함이다. 꾸준함은 성실함과 직결되는 것으로, 다른 어떤 기술보다 더 체득하기 힘든 재능이다. 보통 재능이라고 말하면 타고난 능력을 생각하지만, 재능은 타고난 능력과 훈련에 의하여 획득된 능력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꾸준히 어떤 일을 하려면 해당 일을 하고 싶은 마음과 그 일을 실제로 수행하는 추진력이 결합되어야만 한다. 일주일에 세 편의 글을 쓰는 것은 얼핏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일주일에 세 번 운동을 하거나 산을 오르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게다가 글쓰기 능력이 향상되는 것은 근육이 붙거나 지구력이 생기는 것과는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몸으로 느끼기 어렵다.

영어 선생님이 영어를 잘하는 이유는 매일 일정 정도의 시간을 영어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데 사용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시간을 내서 정기적으로 쓰면 나도 모르는 사이, 글쓰기 능력이 향상된다. 기술적인 부분뿐만이 아니다. 백지를 마주하는 데서 오는 공포는 줄어들고 어떤 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말하고자 하는 용기는 커진다. 한 문장이 다음 문장을 불러들이는 근사한 순간을 마주하는 것은 덤이다.

현실과 동떨어져 생동감을 잃은 글을 죽은 글이라고 일컫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은 글에서는 ‘죽이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죽이다’ 혹은 ‘죽여주다’는 말은 “몹시 만족스럽거나 흡족하게 하다”라는 뜻이다. 죽이는 글쓰기는 해당 글을 읽는 사람에게 만족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더욱 흡족한 것은 쓰는 사람이다. 쓰는 일은 나를 되돌아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단어를 많이 쓰는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지, 궁극적으로 나를 쓰게 만드는 동력은 어디에서 오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글을 읽으며 죽이는 글쓰기가 역설적으로 나를 살리는 경험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글이 가장 빛나는 것도 그때일 것이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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