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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인 질문을 권장한다는 것을 기존의 강연 프로그램과의 차이점으로 강조한 방송에 출연 중이다. 10명의 질문자 중 1인이다. 방송에 나가든 안 나가든 녹화 말미에는 ‘질문상’ 수상 차례가 있는데, 그날의 선생님이 10명 중 가장 인상 깊은 질문을 했던 이를 꼽는 시간이다. 어느 날 녹화 뒤 “서윤씨, 상복 터졌네요. 제일 많이 받은 사람 아니야?”라는 방송작가의 말씀을 들었다. 헤아려 보니, 과연 사실이었다. 녹화장에 앉아 질문을 하라고 섭외가 되었고, 선생님들에게 인상 깊은 질문자로 가장 많이 꼽혔다니, 이쯤 되면 ‘프로질문러’라고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잠시 우쭐할 뻔했다. 프로의 길은 끝없는 수행을 각오하고 걸어야 하는 것. 프로질문러가 되기 위해 정진할 것을 다짐하며, 등대로 삼을 내용을 이 기회에 정리해보고자 한다.

우선 ‘나쁜 질문’이 무엇인지 인지해야 할 것이다. 너무 진부한 질문들(나는 그 사람에게 한 번 질문했을 뿐이지만 상대는 살면서 100번 이상 들었던 질문이라 지긋지긋한 것)이 대표적이다. 나는 가끔 심술궂은 상상을 한다. “어느 대학 나왔어요?”라는 질문에 “(상처받은 얼굴로) 초졸입니다”라고 대답하면 상대는 어떤 감정을 느낄까? “결혼 안 하세요?”라는 질문에 “이미…. (먼 곳을 보며) 그는 지금 이 세상에 없지요”라고 말하면 질문자는 당황하며 뱉은 말을 후회할까? 당연히 모든 사람이 대학을 나왔을 것이라는 편견, 남의 결혼여부가 자신과 상관있다는 태도를 전제로 한 질문에 대해, 나는 상대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을 내놓고 싶다는 욕망을 느낀다. 깊이 고민하지 않고 질문한 이를 반성하게 만들고 싶다는 욕망.

물론 나도 멍청한 질문 많이 하며 살아왔다(인생은 흑역사 갱신의 연속이다). 내뱉지 않는 편이 가장 좋겠지만, 이미 뱉어버렸다면 상대의 기색을 살피는 눈치라도 있어야겠다. 상대가 불쾌해하거나 곤란해하는 기색을 보이면 재빠르게 사과하고 해명하도록. 어떤 질문은 폭력이 될 수도 있기에.

나의 경우 어떤 프레임에 욱여넣기 위한, 일방적으로 나를 판정하기 위한 정보 수집을 목적에 둔 질문을 받았을 때 폭력적이라고 느꼈다. 질문자가 보이는 태도도 한몫했다. 장난기 없이 진지하고 오만한 태도. 심문관 납셨다. “그게 왜 궁금하세요? 무례하신 것 같아요. 기분 나쁜 질문이에요”라고 그 자리에서 분명히 짚었어야 했는데, 하지 못했다. 그런 유의 단호한 말이 입에 붙지 않았기 때문이다.

질문자와 답변자 간에 권력의 차이가 날 때, 문제의 심각성은 커진다. 예컨대 면접장에서 면접관과 지원자의 위계가 그렇다. 친구의 지인이 모 방송사 기자 최종 면접에서 “우리 회사 기자들 중에 자네보다 못생긴 사람 이름 한 명만 대보게. 자네가 TV에 나올 만한 외모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공분한 적 있다. 도대체 무슨 대답을 기대하고 그런 질문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지금 입 놀리는 네 새끼보단 낫습니다”라고 답변하는 배짱이라도 보여주길 바라는 ‘압박’이었을까?

그렇다면 좋은 질문이란 무엇일까. 앞서 말한 나쁜 질문들을 뒤집은 것일 테다. ‘당연한 것은 없다’는 전제 위에 던져지는 진부하지 않은 물음. 해당 화두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알아보게 하는 길잡이. 교류의 즐거움과 앎의 기쁨을 주는 매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질문자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너무 떠받들지도 얕잡아 보지도 않는, 동등한 눈높이로 담백하게 표시하는 존중. 당신을 더 잘 알고 싶고, 당신의 말을 더욱 오해 없이 깊이 받아들이고 싶다는 진심. 상대에게 눈을 반짝이며 몰입하는 집중력.

그러나 녹화 때 강의에 너무 푹 빠져서 방송에 나가지도 못할 질문을 던지는 것은 동료에게 폐를 끼치는 일일 수 있다. 너무 질문 많이 하는 인간 때문에 퇴근시간 늦춰졌다는 눈총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정도 경지까지 올라야 프로질문러가 되는 동시에 프로방송인이 될 수 있는 걸까?

역시 프로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최서윤 아마추어 창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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