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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뱅크에 뒤늦게 가입했다. 은행 가서 대기표 뽑고 기다리는 시간 없이 간편하게 계좌가 만들어지니 신기하다. 그러고 보니 요즘 내가 이런 ‘비대면 서비스’를 꽤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주문 단계에서 결제까지 가능해 배달원과 접촉하지 않아도 되는 배달앱, 커피 전문점의 모바일 주문결제 서비스, 채팅만으로 상품을 주문할 수 있는 홈쇼핑의 ‘톡 주문 서비스’까지 다양하다. 고객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때만 그런 것도 아니다. 초면인 경우 ‘지금 전화 통화 괜찮은지’ 물어보는 것이 예의처럼 느껴질 정도다. 낯선 사람과는 전화 통화조차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사람과 마주치는 것은 물론이고 목소리조차 섞지 않아도 일상에서 불편함을 느낄 수 없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카카오뱅크 앱 이미지. 카카오뱅크 제공

나 역시 처음에는 거부감이 컸다. ‘전화 한 통 하면 될 일을 앱 깔고 회원 가입하고 귀찮지도 않나’ 싶었고, 카운터에서 주문하는 게 편했다. 그런데 딱 한 번 써보고 바로 이 변화의 흐름에 올라탔다. 줄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으니 시간 낭비 안 해도 되고, 정보 전달 과정에서 잘못 알아들을 일도 없다. 편하고 효율적일뿐더러 무엇보다 사람 때문에 불쾌하거나 진을 뺄 일이 없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다. 대면 서비스에서 불쾌했던 경험들도 한몫했다. 초여름에 방문했던 쇤부른 궁전이 특히 그랬다. 오스트리아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은 장소답게 성수기가 아니었는데도 줄 서서 표를 사고, 입장할 때조차 10분 단위로 시간을 끊고 조별로 대기했다 들어가야 했다. 직원들 대부분이 만사 귀찮은 표정이 역력했고, 뭘 물어봐도 고개를 가로젓거나 ‘놉(Nope)’이라고 간단하게만 답했다. 하루종일 밀려드는 ‘뜨내기’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일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비싼 입장료 내고 시간 들여 방문한 관광객으로서는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로봇이 나온다면 이 직원들은 살아남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로봇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다국어 입력 가능한 키오스크로 입장권을 자동 발매하는 게 훨씬 낫겠다 싶었다.

이미 대체가 시작된 곳도 많다. “무인 결제로 인해 커피 품질이 좀 더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어렵지 않으니 겁먹지 마세요.” 커다랗게 써 붙인 ‘한 잔에 900원’ 커피집은 키오스크로 자동 주문만 받는다. 직원은 음료만 만들고, 손님은 주문과 계산을 끝낸 후 음료만 받아가는 식이다.

하지만 모든 영역에서 이런 자동화가 대세인 것은 아니다. “어서 오십시오, 행복을 드리는 ○○ 백화점입니다. 오늘 하루도 저희 ○○ 백화점과 함께 즐거운 쇼핑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백화점 주차장 건너편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차가 들어올 때마다 솔 톤으로 반복되는 멘트를 하루 종일 들어야 했다. 추운 겨울, 스타킹 차림으로 장식용 모자를 쓰고 무릎을 굽혔다 펴면서 손을 흔들어 신호를 보내는 여성들의 노동은 무용(無用)하게만 느껴졌다. 손님들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주차권을 주는 것도 아니고 안내만 하는데도, 마트와 달리 백화점 손님으로 ‘대접받는’ 느낌을 주기에 반응이 꽤 좋다고 한다. 주차장에도 무인 시스템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지만, 한국 백화점의 주차 안내 요원은 좀 더 오래 살아남게 될지도 모르겠다. ‘로봇이 할 수 있지만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아서’ 대체가 불가능한 직업군으로 말이다.

“민영화해서 곡예사들을 계약제로 고용했더니 여자 곡예사들의 생리가 줄었어요. 좋은 일이죠. 사회주의였을 때는 한 달에 몇 번이나 생리를 했거든요.” 헨미 요의 <먹는 인간>에 나오는 폴란드 서커스단 이야기다. 로봇 곡예사가 나온다면 ‘생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아직까지는 로봇보다는 사람이 하는 서커스가 훨씬 매력적이다. 실제 여러 기관의 예측에서 로봇이 대체하기 가장 어려운 직업군은 행위예술가와 같은 즉흥성과 창의성이 핵심인 예술적 직업이라고 한다. 하지만 모든 이가 예술가로 살 수는 없는 법, 기계의 일자리 대체가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면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늘어놓는 대신 어떻게 변화에 대처하는 안전망을 만들어나갈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모든 직업이 자동화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평생직업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라”는 전문가의 조언과 함께.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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