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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청춘직설란에 쓴 ‘아재들에게’가 SNS에서 꽤나 관심을 받은 모양이다. 대리운전을 하며 바라본 50대 남성들의 모습을 담은, 타인에게는 당신의 자기서사를 들어야 할 의무가 없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우선은 50대 남성들로부터 “아재들 건드리지 마라, 우리도 힘들다”하는 직간접적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요약하면, 선배들의 경험이 필요한 시대라는 것이다. 나도 그것을 부정할 마음은 없다. 다만 귀를 열어 후배들의 말을 경청하고 자신의 경험은 몸으로 실천하는 방식을 선택한다면, 조금 더 환영받는 아재가 되지 않을까 한다. 곧 생물학적 아재가 될 나에게 하는 제안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재들의 아우성보다도 더욱 눈길이 갔던 부분은 20대와 30대, 특히 젊은 여성들이 ‘아재들에게’라는 글을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많은 이들이 “글쓴이는 그래도 노동을 하는 쪽이잖아. 나는 손님이 되어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기사의 이야기를 들어야 해”하고 반응했다. 자신이 비용을 지불하는 사용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욱 눈치를 보아야 하고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택시기사들의 몇 가지 유형을 들어 보자면 1) 연애는 하고 있는지 결혼은 했는지, 필요 이상으로 민감한 사적 정보에 대해 묻거나, 2) 여자는 어떠해야 한다, 하는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며 걱정하거나, 3) 자기 자녀들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듣는 이의 처지와 비교하며 자랑하거나, 4) 택시 운전을 시작하게 된 자신의 인생사를 계속 들려주거나, 하는 것이다. 3번과 4번 항목은 나도 자주 경험하는데, 그들의 발화는 택시에서 내릴 때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일이 많다. 나보다 젊은 여성 손님이라면 나이와 성별이라는 특성에 따라 조금 더 ‘경험을 들려주고 싶은 대상’이 될 것이다. 반면, 대리기사들은 같은 운수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그처럼 손님에게 자신의 서사를 들려주는 일이 상대적으로 적다. 조용한 택시기사도 있고 말이 많은 대리기사도 물론 있겠지만, 대체로는 그렇다. 두 집단의 차이는 그들이 운전하고 있는 공간에서 온다. 택시기사들에게 택시는 온전히 자신의 공간이다. 특히 개인택시기사들은 차량이 자신의 소유이고 그 면허의 값만 해도 상당하다. 보조석 앞 공간에 붙은 기사등록증에는 이름도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마치 집의 주인처럼, 그 공간에서 온전한 자기의 몸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리기사들은 타인의 운전석에 앉는다. 운전하고는 있지만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되어 잠시 그 자리를 점유할 뿐이다. 그러면 자신의 목소리로 발화할 수 없게 되고, 대개는 출발과 도착을 알리는 말 정도나 하게 된다.
우리는 타인을 초대하고 나면 그를 환대할 준비를 한다.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공통의 화제를 고민하고, 선물을 마련하기도 한다. 그가 나의 공간에 머무는 동안 함께 행복하기를 바란다. 택시기사들 역시 자신의 공간에 들어온 타인이 그러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진 한 존재로서 먼저 인사하고, 무언가 화젯거리를 찾아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그 공간에서 자신의 주도권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뀌고 나면 문제가 된다. 자기 주도로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강박부터 무조건 자기 의견에 동의해야 한다는 데까지,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해야 주인으로서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믿는 순간 타인과의 갈등이 시작되는 것이다.
타인을 향한 환대는 그를 향한 배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가 준비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내가 꺼낸 화제가 그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무엇보다 그가 조금 더 내밀한 초대에 응하기를 원치 않는 상태일 수도 있다. 그래서 공간의 주인은 언제나 상대방의 처지를 살피고 그의 입장에서 사유해야 한다. 그것이 오히려 주인으로서의 자리를 명확히 해 주면서 초대받은 이들을 즐겁게 해 줄 것이다. 가장 소중하고 명확한 자신의 공간에서 타인에게 실수하기가 더 쉽다. 자기만족을 위한 과한 친절을 베풀거나, 공유해야 할 무언가를 점유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과시하게 된다. 운전석과 조수석이라는 특별한 공간을 굳이 끌어오지 않더라도 일상의 공간 어디에서든 그렇다. 계속해서 초대받고, 또 타인을 초대해야 할 우리는 자신의 공간에서부터 스스로를 가다듬어야 한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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