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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친지들에게 거액을 빌린 뒤 외국으로 도주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래퍼 마이크로닷이 지난 25일부로 모든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채널A의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에서 큰 인기를 모은 뒤 다른 프로그램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던 도중에 터진 ‘불상사’였다. 나 역시 얼마 전 즐겨 보던 예능 프로그램에서 마이크로닷을 보고 호감이 생기던 터였다. 그러나 그의 부모가 20년 전 저지른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범죄, 의혹이 터져나온 직후 마이크로닷과 소속사의 대응 등을 전해들은 뒤 호감이 비호감으로 바뀌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이크로닷 사건 이후 온라인상에서는 연일 연예인 부모를 겨냥한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6일에는 래퍼 ‘도끼’ 어머니의 과거 사기 의혹이 불거졌고, 다음날 도끼가 공식 사과했다. 27일에는 인기 아이돌그룹 마마무의 멤버 휘인의 아버지가 빌린 돈을 갚지 않고 있다는 폭로가 나왔다. 휘인은 당일 저녁에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디에 사는지도 알 수 없는 아버지이지만, 원만히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마이크로닷. 사진 경향DB

사건의 당사자가 된 연예인들은 억울함이 클 것이다. 마이크로닷은 사건이 벌어질 당시에는 여섯살에 불과했다. 성인이 된 뒤 부모가 저지른 범죄를 알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도의적 책임’ 외 법적 책임까지 묻기는 어렵다. 도끼와 휘인 역시 마찬가지다. 부모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이들은 이미지에 큰 상처를 입었다. 조금이라도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 본인들이 수습에 나서고 있다. 아마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들을 비롯한 연예인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나만 잘해선 안되는 시대구나. 주변 관리에도, 사고 후 수습에도 더 신경을 써야겠구나.” 나도 그랬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최근에 만난 종교인들이 생각났다. 종교담당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조금이라도 ‘높은’ 종교인들을 볼 기회가 생기면 항상 이런 질문을 던진다. “종교에 대한 불신이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더 이상 종교를 가지려 하지 않고, 수행길로 들어서려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종교가 다시 대중들에게 다가설 수 있을까요.”

이런 무식하고 기초적인 질문에도 종교인들은 사뭇 진지하게 답을 주신다. 그러나 답변을 듣고 만족스러웠던 경우는 별로 없었다. “나만 잘하면 된다”는 답변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었다. 한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산에 가봐라. 고목이 쓰러지는 소리는 온 산을 울린다. 그러나 작은 묘목이 자라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잘못만 크게 부각되기 마련이니 신경 쓰지 말고 ‘각자 열심히 하다보면 잘될 것’이란 의미로 들렸다. 한 교단의 고위직 종교인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종단을 창시한 분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면 된다.” 역시나 ‘나만 잘하면 된다’는 말로 해석됐다.

답답했다. 조직에 속하지 않은 연예인도 혼자만 잘해서는 되지 않는다. 가족이든 지인이든 주변에서 잘못을 했으면 함께 수습에 나서야 일이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종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항상 조직을 정비하고, 조금이라도 흐트러짐이 없게 단속해야 한다.

만족할 만한 답변은 최근에 한 개신교 목사님에게 들었다.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항상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살피고 대응해야 한다.” ‘종교 불황기’에도 그 목사님이 속한 교회는 계속 신도를 늘리고 있다.

물론 교회의 신도수를 늘리는 것이 종교의 본령은 아니다. 교세 확장에만 몰두하다 종교의 본질까지 훼손해버린 사례도 많다. 그래도 그 ‘성장의 이유’를 유심히 살펴볼 필요는 있겠다. 이제 나만 잘해서 되는 시대는 아니기에.

<홍진수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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