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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조직을 ‘유기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과업은 뭘까. 단연 세대교체다.

어떤 노하우들은 세대를 걸쳐 쌓이고 전수된다. 물론 간혹 백마 탄 영웅이 나타나 일거에 몇 단계를 건너뛰기도 한다. 리오넬 메시 같은 인걸이 한국 축구에서 나오지 말란 법은 없지만, 그가 있어도 월드컵 4강은 장담키 어렵다.

신기한 것은 중국 14억 인구 중에 눈 감고 11명을 뽑아도 한국보다는 축구를 잘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축적된 경험, 노하우 때문인데 이는 세대가 바뀌더라도 그냥 유지, 계승, 발전되는 게 아니다. 뭔가 큰 홍역을 치른 뒤에나 본질적 변화가 가능한 경우가 종종 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참패한 허정무 감독 체제가 흔들렸다. 당시 거의 모든 기자들은 ‘그냥 고!’라며 눈감아줬다. 반면 경향신문의 모 선배가 단기필마로 ‘외국인 감독 체제로 전환’이란 깃발을 들었다. 이는 결국 거스 히딩크를 데려와 2002년 기적을 이룬 밑거름이 됐다. 변화의 주체가 되지 못하면 대상이 될 수 있다.

국내 자동차 산업 위기론이 심상찮다. 그동안 현대차는 세대를 걸쳐 얼마나 발전해왔을까. 수소전기차 등 미래형 기술 개발은 고무적이다. 다만 나무에 꽃 피고 열매 맺기만 기다리다가 큰일 치를 수도 있겠다 싶다. 겨울이 깊다. 기본 기술력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 전기차도 차다. 수십년 해온 전통 차량조차 문제가 있다면, 마운드를 갈아엎어야 할 판이다. 선수 교체 타이밍이다.

중대기로에 선 지금 현대차 구조에 변화가 엿보인다. 일단 최고 수뇌부의 위치 조정이다. 9월 정의선 수석부회장으로 직급이 한 단계 올랐다. 2005년 경영 전면에 나선 그는 3세대 젊은 지도자로서 새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기대됐다. 그동안은 부는 듯 마는 듯, 좀 뜨뜻미지근했다. 이제 핸들을 잡은 만큼, 앞으로 더 확실한 색깔을 내주길 기대한다. 요즘 고성능차를 강화하는 노력이 일례로 보인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다. 서울 강남의 한국전력 부지를 10조원에 매입한 일이다. 그 어마어마한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지 많은 이들은 걱정한다. 현대·기아차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율이나 규모는 주요 경쟁사와 비교하면 안타깝다. 강남 노른자 땅에 근사한 뭘 세우든지 소비자들은 별 관심이 없다. 이런 것들이 부친 정몽구 회장의 결단이겠지만 미래지향적인 해법을 내놓을 것으로 믿는다.

40대 중반 한 지인이 지난여름 독일산 수입차로 옮겨탔다. 출력, 토크 등 드러난 성능만 비교하면 현대차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핸들링이나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탄탄한 서스펜션, 연비 따위가 솔직히 한 수 위라고 말한다. 그에게 물었다. “다음에 현대차로 돌아갈 거야?” 예상대로 부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전기차 시대에는 현대차가 ‘불판’을 갈 수 있을까.

그동안 정 수석부회장이 피터 슈라이어 등을 데려와 디자인을 끌어올리는 데는 성공적이었다. 이젠 기술 전문가부터 영입하는 게 더 필요해 보인다. 디자인은 그만하면 수준급이다.

차는 차(車)다. 한자 모양대로 프레임에 바퀴 달고 굴러가는 뭔가다. 무엇보다 잘 달리고, 돌고, 서야 한다. ‘화장발’은 이내 드러난다. 가솔린 직분사(GDI) 엔진을 비롯한 결함 차량을 만드는 동안에도 디자인만 너무 강조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라. 세대교체에 실패한 조직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지 요새 축구를 보며 새삼 깨닫는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정 수석부회장이 진정 용기가 있다면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 문구를 화두로 품을 만하지 않을까. 스스로를 파괴하지 못하는 자는 무엇도 제대로 바꿀 수 없다.

<전병역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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