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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수형이 결혼을 한단다. 이 글이 실린 신문의 헤드라인 뉴스를 통해 소식을 들었다. 그날 다른 신문들의 제1면은 한 이성애자의 권력을 이용한 ‘음란하고 더러운’ 성추문으로 넘실대고 있었다.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파트너와 다정한 눈길을 주고받으며 ‘아름답고 성스러운’ 결혼을 발표하는 그는, 바로 동성애자 영화인 김조광수였다.


나와 남동생, 우리 남매에게는 시쳇말로 ‘어(색한 자)부심’이 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게이 두 명과 같은 집, 같은 방에서 머물렀다는 사실이다. 한 사람은 군에 입대하기 직전 우리 자취방에서 자고 간 ‘한국 제1호 게이 연예인’ 홍석천이고, 다른 한 사람은 여름방학 동안 우리 집에서 동생과 친구들을 ‘학습’시킨, 내년에 ‘한국 제1호 동성 결혼식’을 거행한다고 발표한 김조광수다. 동생은 그들과 같은 대학에서 연극영화를 공부한 선후배 사이다.


사실 우리 남매가 만난 그들은 ‘게이’가 아니었다. 그때 그들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긴 채 고통과 고독에 홀로 맞붙어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신문 1면을 장식한 광수형의 결혼 보도를 접하는 우리의 심경은 참으로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우리가 알고도 모르는 사람, 미안하고도 안타까운 과거이자 현재이기 때문이다.


광수형은 한양대 연극영화과의 ‘전설’이었다. 1980년대 연극영화과에 자연 발생한 최초의 ‘운동권’으로, 예비역 선배들에게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지하 소극장에서 두들겨 맞았다. 그때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김동회 역을 맡았던 배우 이일재가 막아섰다가 같이 몰매를 맞기도 했다는데, 어쨌거나 이후로 한양대 연극영화과에서 공식적인 구타는 사라졌다. 하지만 광수형의 못 말리는 반골 기질은 운동권 내에서도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워, 빨간 점퍼에 날라리 같은 그의 모습을 의심한 운동권들로부터 프락치 혐의를 받기까지 했다는 ‘웃(기고 슬)픈’ 일화도 있다.


동생의 신입생 시절 ‘살아있는 전설’이었던 광수형은 후배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곱상한 외모와 달리 아니다 싶으면 까칠하고 매정하게 등을 돌리는 성격으로 은근히 적을 만드는 유형이었지만, 술이 매우 약해 술자리를 기피하면서도 힘들어하는 후배가 있으면 “무슨 고민 있니? 우유나 한 잔 하자”며 손을 내미는 따뜻한 선배이기도 했다. 우리 자취방에서 합숙하며 학습할 때에도 식사 준비며 뒷설거지는 인천의 작은 분식집 아들로 자란 그의 몫이었다. 엽렵하고 재발라서 농촌봉사활동을 가면 짐을 풀자마자 수십 명의 농활대가 열흘 동안 먹을 김치부터 담그고, 요리 중에 특히 계란탕을 기막히게 잘 끓이는 솜씨가 있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엄마가 해주는 밥만 얻어먹고 자란 대다수의 신랑·신부들보다 결혼 생활을 알뜰하게 꾸릴 준비가 확실하게 된 사람이다.


하지만 재미난 추억 속에도 지르르 마음을 저리게 하는 기억의 조각들이 있으니, 주로 그의 성정체성에 대한 무지 혹은 무시가 빚어냈던 상황이다. 우리가 아는 그는 다만 우리가 편리하게 단정해버린 광수형이었을 뿐, 그의 에세이집에 등장하는 것처럼 낮에는 운동권으로 살고 밤에는 P극장 근처를 배회하며 이중생활의 괴로움에 몸서리치는 동성애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동생은 광수형의 커밍아웃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문득 가슴이 서늘해졌다고 했다. 당시의 사회, 그리고 운동권의 문화는 지극히 마초적이고 소수자들에게 폭압적이었다. 무지와 무신경은 때로 죄가 된다. 우리 또한 무의식적으로 그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을까?


광수형은 농담 삼아 자신의 가명을 ‘조(선의)진(짜)호(모)’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어떻게든 성정체성을 ‘극복’하고자 여자 친구를 사귀어보려 애쓰기도 했다. 어떤 무지한들은 지금도 동성애를 이성애로 바꾸지 못하는 동성애자들의 타락한 욕망과 의지박약을 비난하지만,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자신들부터 이성애자에서 동성애자로 변모하는 시범을 보여주길 바란다. 고칠 수 있다면 정말로 고치고 싶은 것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최초로 자각할 무렵 그들의 심경이기 때문이다.


나는 광수형의 결혼에, 동성 결혼 합법화에 찬성한다. 동성애가 말세의 징후라면 그리스 로마나 삼국시대쯤 진즉에 세상은 멸망했어야 한다. 동성애자들의 성생활보다는 어떤 커플을 볼 때마다 그들이 어떤 체위로 섹스하는지 따지는 이들이 훨씬 더 변태적이다. 네 가족이라면 어쩌겠느냐고 반문하는데, 나는 항상 아들에게 말하기를 세상 모두가 네게서 등을 돌릴지라도 나는 너를 지지할 마지막 사람이라고 다짐한다. 그 절대의 사랑에 성정체성만이 예외일 리 없다. 그리고 가외로, 얻는 것만큼이나 잃는 것이 무수한 결혼 제도의 불합리를 이성애자들만 겪을 수는 없다. 동성애자들도 기꺼이 ‘고통 분담’해야 마땅하다. 마지막으로 동생의 메시지를 전하며, 광수형과 그의 파트너 승환씨의 앞날을 축복한다. 


동반자와 입맞추는 김조광수 감독 (경향DB)


“형! 가시 돋친 꽃 덤불 위를 맨발로 걷기 시작하신 것을, 축하하고 위로합니다!”



김별아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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