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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나는 돛 없는 배였고, 태어나면서부터 잠수부처럼 이 항구에서 저 해안으로, 애달픈 가난에서 불어오는 메마른 바람을 따라 떠돌아야 했다.” 15세기 피렌체의 공화주의자였던 단테는 교황의 군대가 이탈리아를 점령하자 목숨을 건지기 위해 도망을 쳤고, 추방된 단테는 객사했다. 단테는 <신곡>에서 그 분노를 담았다. 당대의 두 교황을 지옥에 던져 넣었는데, 성 베드로가 이들을 향해 “너희는 내 무덤을 피와 더러움을 담는 그릇으로 삼았다”고 선언했다. 단테는 “어떻게 악한 사람이 잘사는 상황이 계속될까?” “만일 하느님이 그런 일을 막을 수 있다면 왜 그 힘을 쓰지 않을까?” 질문하면서, 그가 만난 악한 정치가와 교황, 성직자들을 지옥에 처넣었다.


당대의 알렉산더 6세 교황은 전쟁을 부추겼으며, 부인이 다섯이나 되었는데, 그 자식들 중에는 교황 군대의 사령관이 된 체자레 보르지아도 있었다. 이들은 전쟁포로들을 바티칸 뜰에 끌어다놓고 활쏘기 과녁으로 삼아 즐겼다. 결국 체자레도 죽임을 당하고, 교황도 독살되었지만, 뒤이은 율리우스 2세 교황이나 레오 10세 교황 시절은 마르틴 루터가 촉발시킨 종교개혁의 빌미를 제공해 주었다. 


한편 이들은 궁전과 성 베드로 성당, 시스티나 성당 등을 지으면서 예술가들을 먹여살렸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면서, ‘최후의 심판’에 천둥으로 내리치는 그리스도, 그리고 지옥에서 아비규환을 이루고 있는 성직자들을 그려 넣었다. 그는 교회개혁을 갈망하다가 파문당한 도미니코회 수도자 사보나롤라의 예언, 그리고 단테의 분노를 그림에 담았다. 세상과 교회의 권력을 쥐었던 자들은 심판 앞에서 ‘벌거벗은 채’ 공포에 떨어야 했다.


'최후의 심판', 1537~1541, 13x12m, 프레스코화,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올봄에 선출된 교황 프란치스코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이런 교황권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요한 23세 교황과 바오로 6세, 요한 바오로 1세 교황의 유지를 받들어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꾀했던 교회개혁을 지속하고, 특별히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이들의 교회’를 희망하고 있다. 곧 ‘가난’을 다루는 그의 첫 회칙이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교황좌에 오른 지 33일 만에 죽는 바람에 개혁에 실패한 요한 바오로 1세를 위해 이 시간 묵념하고 싶다.


현충일, 내가 살고 있는 빌라촌 골목에서 태극기를 단 집은 단 두 집뿐이다.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인터넷사이트 ‘일베’에 들어가보니, 5·18에는 그렇게 극성을 부리더니 정작 현충일에는 순국선열을 위해 묵념하는 인간이 없다는 ‘한탄’이 가득하다. 이들은 ‘일베충’이라고 자신들을 부르는 데 동의하며 ‘일베’에 ‘충’성을 다짐한다. 이들이 싸안고 도는 세력은 해방 이후 10여년을 빼고는 언제나 권력을 독식해왔던 자들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으로 이어지는 권력놀음에서 오히려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글쎄, 미켈란젤로가 다시 한국 사회의 지옥도를 그린다면, 누구 얼굴이 제일로 또렷할지 궁금해진다.


미켈란젤로와 함께 바티칸을 장식했던 라파엘로는 당대의 일베충이라 불러도 좋을까? 그는 화색이 도는 얼굴과 상냥한 성품, 황실화가의 아들답게 탁월한 재능으로 유쾌한 매력을 발산해 돈방석에 앉아 명예도 누릴 수 있었던 행운의 사나이였다. 그러나 끊이지 않는 연애와 방종으로 열병을 얻어 37살에 운명을 마친 게 야속할 따름인 사나이. 이런 여한을 남기지 않으려고 한국의 일베충은 약삭빠르게 적절한 연애와 관음증, 그리고 건강에 마음 쓰고 있다. 라파엘로가 누린 행운의 비결은 지배계급을 그렸기 때문이다. 라파엘로가 그린 성화 안에는 당대 교황과 상인과 귀부인들의 얼굴이 비친다. 그가 그린 초상화에서 사람들은 한결같이 목을 내밀고 배를 내밀고, 불그레한 얼굴로 한창 잘 살고 있는 모습이다. 심지어 성모 마리아는 누추한 시골집이 아니라, 궁전에서 천사에게 ‘예수아기 잉태’의 소식을 듣는다. 이른바 라파엘로는 단아한 ‘명품’을 지향한다. 십자가 아래에 있는 여인들조차 머리를 단정히 여미고 울부짖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스티나 성모



라파엘로의 그림은 ‘식스투스의 성모’에서도 그러하듯이, 인물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우아하지만 생기가 없다. 어차피 작품에는 화가의 영혼이 담기기 마련이다. 권력자와 부자들의 초상화를 그려서 떼돈을 벌고, 늘 사람이 꼬이고 여자가 많았던 쾌활한 라파엘로는 가난하고 ‘고독한’ 미켈란젤로를 조롱했지만, 미켈란젤로는 그런 경박한 라파엘로를 경멸했다. 경박한 라파엘로는 품위 있는 지배층을 그렸지만, 미켈란젤로의 그림에는 고통과 슬픔이 가득한 인간이 늘 주변을 서성거렸다. “인간은 자기 주위의 세상이 울 때 웃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던 미켈란젤로에게 세상은 장밋빛이 아니었다. 일베에 난무하는 조롱과 비아냥으로 범벅이 된 경박한 글들은 ‘영혼 없는 영혼’의 일그러진 초상일 뿐이다. 마켈란젤로는 평생 초상을 그리지 않았다. 슬픔이 없는 자여, 일베로 가라!



한상봉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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