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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하는 이가 대등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나 아랫사람을 상대하여 자기를 가리키는 일인칭 대명사. 2. 남이 아닌 자기 자신. 자아. 3. 대상의 세계와 구별된 인식·행위의 주체이며, 체험 내용이 변화해도 동일성을 지속하여, 작용·반응·체험·사고·의욕의 작용을 하는 의식의 통일체.”


국어사전에서 찾아본 어느 낱말의 뜻풀이다. 항용 사전에서 모든 표제어들의 기술 내용은 서로 의존적이다. 모든 설명은 죄다 이런 식이다. 기역은 니은에 기대고 니은은 디귿에… 히읗은 다시 기역에 의지한다. 그러니 사전은 결국 뱅뱅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그건 사전이 부실해서가 아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과 현상을 설명하고자 하는 인간 언어의 한계가 그럴 수밖에 없다. 이것은 저것이 아니고 그것과 다르다, 라고만 할 수 있을 뿐 이것은 이것이다, 라고 정의할 수 있는 근거가 도대체 없는 것이다.


아침에 먹은 밥이 국과 다르고, 반찬과 다르고, 식탁과 다르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숟가락에 실려 입으로 들어와 부드럽게 씹히는 흰 물질. 그것의 전신이 쌀이고, 논에서 왔고, 식물의 열매이다, 라고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아무리 읊어도 앞에 앉은 이가 글쎄, 그건 알겠는데, 그래서 그게 도대체 무엇이냐, 라고 다시 물으면 그만 말문이 막힌다. 그리고 급기야는 화를 벌컥 내면서 이런 한마디를 내지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씨바, 쌀밥이라니깐!”


앞에서 설명한 낱말은 짐작하다시피 ‘나’다. 참 빤하고 너무나도 잘 알고 늘 함께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저렇게밖에 영 설명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더 있다. 표제어로서 사전 속의 ‘나’는 그렇다 치고 사전 바깥에서 숨쉬고 먹고 싸고 돌아다니는 물체인 ‘나’는 어떻게 하겠느냐이다. 누가 나보고 “너는 누구냐?”라고 말로 찔러올 때 무슨 대답을 하겠느냐이다. “제기랄, 나, 나라니깐!”이라고 지껄일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처럼 ‘나’를 ‘나’로 ‘나’답게 증명하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증명이라는 말과 맞물려 올해로 4주기를 맞이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다. 그는 말 때문에 지독히 곤욕을 치른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그이만큼 마이크 앞에서 우리 국어를 정확하게 구사한 사람도 참 드물었다.


전국 평검사들과의 토론회에서 모두 발언에 참여한 검사들 (경향DB)


그가 ‘기적적으로’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삐딱한 운동장’의 심판이 되었다. 공은 차지 않아도 자꾸 특정한 방향으로만 굴러갔다. 운동장의 기울기 때문이었다. 취임 초 노 대통령이 ‘평검사와의 대화’를 열고 텔레비전에서는 이를 전국에 생중계했다. 다른 건 모두 지나갔는데 한 단어가 귀에 걸렸다. 대강 이런 요지의 말들 속에서였다. 대화가 시작되고 먼저 평검사회의 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대통령께서는 토론의 달인이라고 들었습니다. 오늘 대화에서 말로서 우리를 제압하지 말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냥 지날 법했는데 대통령이 바로 응수했다. 미리 준비한 원고가 아니라 즉흥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방금 그 말씀은 저에겐 대단히 모욕적으로 들립니다. 내가 마치 공연히 말재주만 피우며 살아온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는 나의 가치와 신념을 그동안 내 살아온 삶으로 증명해 왔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구독한 잡지가 있었다. <수학의 정석>의 저자인 홍성대씨가 발행한 수학 전문지였다. 제호는 <수학세계>. 교과서나 참고서에선 볼 수 없는 낯선 수학 문제도 있었지만 수학계의 화제와 교양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었다.


나는 본고사 세대다. 연합고사를 본 후 지원한 대학에서 본고사를 따로 치렀다. 어느 해 서울대학교 본고사에 이런 문제가 나왔다. “√2가 무리수임을 증명하시오.” 이는 수험생의 의표를 찌르면서 수학의 기본에 충실하라는 출제 의도가 다분히 엿보이는 문제였다.


그해 시험이 끝나고 입시에 관여했던 출제, 채점 교수들의 좌담회가 잡지에 실렸다. 그 증명 문제가 화제에 올랐다. 내가 교과서에서 배운 간단한 풀이법은 다음과 같다. √2가 유리수라고 가정한다. 이를 서로 약분이 되지 않는 분수꼴로 만들고, 양변을 제곱해서 루트를 벗기고, 이를 계속 전개한다. 그러다 보면 모순에 빠진다. 유리수라는 가정이 틀린 것이다. 따라서 √2는 무리수이다.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알고 나면 쉽지만 과연 증명은 만만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그때 수험생들의 답안지에는 이런 기발한 것도 있어 좌담회의 사람들을 포복절도케 하였다고 했다.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는데 √2는 무리수이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2는 무리수이다.” 요즘이라면 혹 이런 무작스러운 답이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겠다. “내가 문제를 많이 풀어보아서 아는데, 루트2는 무리수여!”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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